32세의 놀란 감독은 지난해 국내에도 개봉됐던 저예산 독립영화 ‘메멘토’로 일약 천재 감독이라는 극찬을 받았던 영국 출신의 젊은 감독.
500만달러의 제작비와 가이 피어스 등 조연급 배우를 기용해 만든 ‘메멘토’가 큰 성공을 거둔 뒤 놀란감독이 할리우드의 자본(제작비 4600만달러)과 톱스타(알 파치노, 로빈 윌리엄스)를 캐스팅해 만든 영화가 ‘인썸니아’다. 1997년 만들어져 호평을 받았던 노르웨이 영화 ‘인썸니아’의 리메이크 작품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썸니아’는 ‘메멘토’를 기억하는 팬들에게 평범하게 느껴지는 영화다.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가며 거대한 기억의 퍼즐을 맞춰갔던 ‘메멘토’의 독특한 형식이나 파격은 이 영화에 없다. 그러나 ‘메멘토’를 잊고 ‘인썸니아’만 놓고 본다면, 이 영화는 잘 만들어진 할리우드 스릴러다.
배경은 백야(白夜)가 계속되는 알래스카. 17세 소녀의 시체가 발견되지만 사건의 방향은 오리무중이다. LA경찰국의 형사 도머(알 파치노)는 사건수사를 지원하기 위해 동료 햅과 함께 알래스카로 온다.
도머는 경찰 교재에 등장할 만큼 유명한 베테랑 경찰이지만 증거 조작 혐의로 LA경찰국의 내사를 받고 있는 중. 그는 살인 용의자를 유인하는데 성공하지만 자욱한 안개로 인해 용의자 대신 동료 햅을 쏴 죽인다. 햅은 내사중인 경찰에게 도머에 대해 불리한 증언을 하려던 인물.
이 때문에 고의로 햅을 죽였다고 의심받을 것을 우려한 도머는 소녀의 살인범이 햅을 죽인 것으로 증거를 조작한다. 그러나 도머가 동료를 죽이는 장면을 소녀 살인범인 핀치(로빈 윌리엄스)가 목격하면서 영화는 재미를 더한다.
‘범인이 누구인가’를 쫓는 대신 이 영화는 초반부터 범인을 드러낸다. 소녀 살인범의 살인 증거를 가진 형사와 그 형사가 동료를 죽이는 장면을 목격한 살인범사이에 팽팽한 심리전이 펼쳐진다. 여기에 신참 여형사인 앨리(힐러리 스웽크)가 햅 살인 사건을 맡아 자신이 존경하는 고참 선배의 뒤를 쫓게 된다.
알 파치노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백야에 잠 못이루는 도머의 모습을 붉게 충혈된 눈과 눈밑의 검은 그림자로 실감나게 연기했다. 코미디 영화보다는 진지한 영화(‘굿 윌 헌팅’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연기력이 더 돋보였던 로빈 윌리엄스는 이번에도 악역을 맡아 알 파치노와 멋진 조화를 이뤘다. 15세 이상. 15일 개봉.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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