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는 흥행의 힘▼
기존 저녁 시간대 일일극은 대가족 아래에서 일어나는 복잡다단한 일상을 에피소드 중심으로 나열하는 식의 ‘홈 드라마’를 표방했다. 그러나 ‘인어아가씨’는 일일극에서 시도되지 않았던 ‘복수극’을 소재로 내세웠고 극의 전개도 빠르다. 자신과 어머니를 버리고 떠난 아버지에게 복수하기 위해 이복 동생의 약혼자를 유혹하는 등 자극적인 내용이 줄거리다.
복수극의 주인공은 방송작가 은아리영(장서희). 극중에서 집필하는 드라마마다 ‘대박’을 터트리는 능력과 미모를 겸비했다. 그러나 그는 복수극을 치밀하게 실행하는 이중성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복수극이 피해자인 은아리영의 일방적 승리로 전개되는 설정이 시청자들에게 공감과 후련함을 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주부 김지숙씨(35·서울 관악구 봉천동)는 “비참하게 죽은 동생이나 어머니가 실명하는 아픔을 가진 은아리영의 아버지에 대한 복수는 비정할수록 설득력있게 다가온다”며 “멜로와 복수극의 결합이 흥미를 준다”고 말했다.
또 사회적 약자로 분류되는 여성의 복수극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 시청자에게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주는 설정이다. 1999년 SBS 드라마 ‘청춘의 덫’이 시청률 40%에 육박하는 성공을 거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와 관련해 은아리영 역을 맡은 장서희의 표독스런 연기도 시청자들을 흡인시키는 요인으로 손꼽히고 있다.
▼미니시리즈+일일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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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인의 복수극이나 드라마의 분위기는 심각하지 않다. 조연들이 마주치는 상황을 시트콤 스타일의 일일극으로 바꿔 주연들의 복수극에 가미한 덕분이다. 엄한 시어머니 역할을 주로 해왔던 탤런트 김용림은 50대 푼수 여성으로 등장한다. 그는 남편의 휴대전화 벨소리를 “웬수야 전화받어”로 바꿔놓기도 한다. 탤런트 정보석은 ‘마마보이’ 마마준 역을 맡아 ‘엄마’에게 연애담을 시시콜콜 털어놓고 걸핏하면 동생(이재은)에게 ‘이년 저년’하며 싸운다. 이런 캐릭터는 복수극의 흥미를 반감시킬 듯하지만 오히려 드라마의 재미를 이어가는 감초가 되고 있다.
이주환 PD는 “이 드라마는 일일극 특유의 홈드라마 형식에 미니시리즈 성격의 주제를 접목시킨 셈”이라며 “복수극이라는 큰 줄기 사이에 홈드라마적 요소를 가미하기 위해 가족들의 일상을 잔재미로 가미했다”고 말했다.
방송가에서는 미니시리즈와 일일극의 접목이 ‘성공’한 것은 결국 드라마는 ‘스토리가 뚜렷해야 성공한다’는 흥행공식이 일일극에도 적중한 사례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화여대 주철환(언론영상홍보학부) 교수는 “‘인어아가씨’의 흥행 성공은 기존 시시콜콜한 홈드라마에 시청자들이 식상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긴장과 이완을 안배하는 작가의 능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화려한 볼거리, 그러나…▼
‘인어아가씨’는 신문사 및 방송사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주인공의 직업을 탤런트, 기자(신문사 사주의 아들), 방송작가 등으로 설정한 것은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기 쉽기 때문. 여자주인공은 늘 명품으로 치장하고 다니고 집 내부도 화려하다.
이같은 배경은 극중 인물의 리얼리티를 떨어트린다는 지적을 받는다. 기자나 방송 작가 등이 그다지 화려한 직업은 아니기 때문. 게다가 드라마속 신문사나 방송사의 풍경은 재미를 부각시키는 방향으로만 맞춰져 있어 현실을 왜곡시키는 경우도 있다.아리영의 이복동생인 태양일보 문화부 기자 예영이 아버지와 같은 부서에서 상사와 부하직원의 관계로 일하거나 드라마 제작이 방송 작가의 지시대로 이뤄지는 것도 그런 사례중 하나다. 이 PD는 “드라마의 주제가 사랑과 가정이기 때문에 직업 세계를 자세히 그리는데 상대적으로 소홀할 수 밖에 없다”며 “시청자들의 지적을 수용해 조금씩 고쳐나가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김수경기자 sk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