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상 이창동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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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을 예상했나.
“시상식전에 본상 외의 비공식 상인 ‘국제비평가협회상’ ‘가톨릭 비평가상’ ‘젊은 영화 비평가상’을 차례로 수상해서 ‘이게 좋은 신호인지, 나쁜 신호인지’ 헷갈렸다.”
'오아시스' 맛보기 | 예고 , 스틸 |
-오아시스가 이렇게 평가를 받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글쎄. 이곳의 반응도 한국의 반응과 거의 비슷했다. 다들 처음에는 영화를 ‘불편하게’ 보더라.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자신의 마음속의 ‘벽’을 넘어가면서 영화의 메시지를 받아들였던 것 같다.”
심사위원들은 ‘오아시스’에 대해 ‘표피적인 영화의 기교들을 피해가면서 영화의 본질에 더 가깝게 다가간 영화’ ‘사랑 이야기를 통해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더 심층적으로 보여준 영화’라고 평했다.
이감독은 잘 알려졌듯 ‘늦깎이 감독’이다. 80, 90년대에 소설을 열심히 읽은 사람이라면, 그의 이름을 ‘역량있는 소설가’로 기억할 것이다. 경북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국어 교사로 교편을 잡고 있던 그는 19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전리(戰利)’로 등단했다.
이후 그는 분단 소설의 대표작 중 하나로 손꼽히는 ‘소지’, 소시민의 보잘 것 없는 삶에서 ‘희망’을 찾아낸 ‘녹천에는 똥이 많다’ 등 사회성 짙은 소설을 써서 호평을 받았다. 그러다 1993년 박광수 감독의 영화 ‘그 섬에 가고 싶다’의 시나리오를 쓴 것이 계기가 돼 아예 박감독의 조감독으로 영화에 입문하게 됐다.
마흔 세 살(1997년)에 데뷔한 그의 필모그래피(Filmography)는 짧다. 그가 만든 작품은 ‘오아시스’까지 고작 세 편. 그의 소설은 ‘인간 이해의 여러 도식들과 싸우며 그 도식을 넘어서 삶의 진실을 포착하는데 초점을 맞춰왔다’는 평을 들었는데 이런 평가는 그의 영화에 그대로 적용해도 무리가 없을 듯 하다.
데뷔작인 ‘초록물고기’가 밴쿠버 영화제에서 용호상을 수상한데 이어 두 번째 작품인 ‘박하사탕’은 동구권의 명망있는 영화제인 카를로비바리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거머줬다.
“만드는 영화마다 호평을 받는 이유가 뭐냐”고 묻자 그는 “제가 사기를 좀 열심히 쳤지요” 하며 웃었다. 그는 농담으로 질문을 넘겼지만 이에 대한 대답은 그가 언젠가 쓴 ‘자기 소개’ 글에서 찾을 수 있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나름대로 삶에 대한 시각이 있어야 한다. 영화는 본질적으로 우리네 삶과 유리되어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영화란 ‘진짜를 담아내는 것’이며 ‘진짜’란 우리 삶의 숨겨진 진실들을 찾는 것이다.”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
▼신인배우상 문소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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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에 예쁘게 비춰지는 데만 신경쓰는 여배우들은 꺼려할 만한 역할이었지만 그는 기꺼이 중증 장애인역을 맡았다. “배우는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직업이 아니라 연기를 보여주는 직업”이라는 소신때문이었다.
그는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문소리’는 예명 같지만 그의 본명. “‘문’씨인 아빠와 ‘이’씨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작은 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가 처음 연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고등학교 때. 최민식이 주연한 연극 ‘에쿠우스’를 본 뒤였다. 뭔지 모르지만 강렬한 충격을 받았던 그는 대학(성균관대 교육학과)에 진학한 뒤 연기를 배우기 위해 연극반 활동을 했다. 1년간 휴학하고 남원에 내려가 명창 남해성씨에게 따로 판소리를 배우기도 했다. 이 때문에 목소리도 다소 중성적으로 바뀌었다.
1987년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탄 강수연에 이어 한국 여배우로는 두 번째로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연기력을 ‘공인’ 받았지만, 그는 아직도 자신의 연기에 대해 한참 멀었다고 생각한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영화는 어떤 것일까. “우리의 정서가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영화는 예술이니까 혼이나 정신이 바탕에 깔려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배우 기근에 시달리는 충무로가 모처럼 청량한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 같다.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
▼'오아시스' 수상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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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최고(最古) 영화제인 베니스 국제영화제의 올해 경향을 요약하면 ‘금기에 대한 도전과 고정관념의 뒤집기’라고 할 수 있다.
경쟁부문 최고의 영예인 황금사자상을 탄 영국영화 ‘막달레나 시스터즈’(감독 피터 뮬란)는 가톨릭 교회가 운영하는 아일랜드의 세탁소에서 혹사당하는 여성 4명의 이야기로, 교회에서 은밀하게 벌어지는 억압과 폭력을 다뤘다. 이 영화의 수상소식이 전해지자 바티칸은 성명을 내고 “이 영화가 상을 탄 유일한 이유는 반(反)가톨릭이기 때문”이라며 “이는 가톨릭 교회에 대한 원한에 사무친 도발”이라고 비난했다.
수상작은 아니지만 9·11 테러를 다룬 국제 프로젝트 ‘9’11’01’은 테러를 반미(反美)적 시각에서 그려 영화제 내내 파문을 일으켰다. 전과자와 뇌성마비 장애인의 사랑을 그린 ‘오아시스’ 역시 기존 고정관념을 뒤집는 파격적 멜로. 올해의 베니스는 상업적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편향이 지나치다는 우려를 씻고, 기존 가치를 전복하고 도발하는 용감한 영화들 편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오아시스’는 6일과 7일(현지시간) 열린 시사회에서 기립박수를 받았고 “사랑과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 영화”등의 찬사를 받으며 일찌감치 수상이 예견되었다. 영화평론가인 서울예대 강한섭 교수는 “서구 예술영화들이 날로 쇠퇴해가고 있는 환경에서, 이번 ‘오아시스’의 수상은 한국이 세계 영화예술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새로운 근거지로서 주목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했다.
또한 그동안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탔던 영화들이 대개 한국의 전통이나 토속적 정서를 바탕으로 한 작품들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대를 배경으로 한 ‘오아시스’의 수상은 이국적 동양문화에 대한 서구인들의 호기심 차원을 뛰어넘어 작품 자체에 대한 평가라고 할 수 있다.
‘오아시스’ 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는 이번 수상을 계기로 서울과 부산, 인천의 CGV, 메가박스 등 복합상영관에서 ‘오아시스’의 장기상영을 계획하고 있다.
이 밖의 주요 부문 수상자(작)은 다음과 같다 (괄호안은 국적·영화) ▽남우주연상〓스테파노 아코르시(이탈리아·‘사랑으로 불리는 여행’) ▽여우주연상〓줄리안 무어(미국·‘천국에서 먼’) ▽심사위원 대상〓안드레이 콘찰로프스키 감독(러시아·‘바보들의 집’) ▽특별상〓에드워드 래크먼(미국·‘천국에서 먼’)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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