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드 무비’ 전문가 엇갈린 평가

  • 입력 2002년 10월 14일 17시 51분


18일 개봉될 영화 ‘로드 무비’는 동성애를 본격 멜로의 소재로 삼은 문제작. 이전 대부분의 동성애 영화가 사회적 발언의 비중을 높였다는 점과 차별화된다. ‘로드 무비’는 “올해의 발견”이라는 칭찬에서부터 “겉멋만 요란한 얼치기 예술”이라는 비난까지 평가가 크게 엇갈린다. 5점을 만점으로 이 영화에 각각 4점, 2½점을 준 두 평론가의 상반된 평을 함께 싣는다.<편집자>

▼전찬일(영화평론가) “수작”★★★★▼

‘로드 무비’를 그저 동성애 영화로 규정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엇보다 영화 속 여주인공 일주의 대식을 향한 애달픈 사랑을 무시하는, 지독히도 폭력적 처사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마스카라’(1994, 감독 이훈)나 ‘내일로 흐르는 강’(1995, 감독 박재호) 등 기존의 국내 동성애 영화들이 이루지 못한 영화적 성취를 일궈냈다는 사실을 의심하진 않는다.

배우들의 열연을 비롯해 복합적인 인물들의 성격화, 인상적인 음악 효과 등의 기본적 덕목에 대해서는 굳이 거론하진 않으련다. 우선 적잖은 논란을 불러올 법한 극사실적 동성애 묘사부터가 주목할 만한 미학적 선취다.

동성애가 사랑의 또 다른 형태라고 말로는 인정하면서도 실제로는 비정상적이고 변태적인 성도착쯤으로 간주하는 것이 일반적 현실이다. 그래서일까, 기존의 영화들에서는 내재적으로 필수불가결한 경우에도 절제 등의 핑계를 대며 동성애의 구체적 묘사를 억압 혹은 기피하곤 했다. ‘로드 무비’는 동성애도 사랑이란 것을 말이 아니라 실천적으로 보여준다. 그 표현이 감동적이리만치 당당하다. 그 당당함이 내가 이 영화를 적극 지지하는 으뜸 이유다.

그러나 여기서 그쳤다면 영화는 센세이셔널리즘에서 자유롭지 못한 시도에 그치고 말았을 것이다. 이 영화는 단순한 동성애 영화를 넘어 ‘관계’에 천착하는 휴먼 드라마로까지 비상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대식은 석원과의 만남을 통해 그토록 거부하던 사랑의 가치를 믿게 되고, 석원은 대식의 사랑을 통해 변태라고 치부하던 동성애도 사랑일 수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길 위에서 이루어진 그 변화 속에는 어떤 영혼의 울림이 담겨 있다. 동성애를 향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뒤흔들 뿐 아니라 과정으로서의 삶을 반추하게끔 하는 그윽한 정서적 울림이…. 그 울림만으로도 실은 ‘로드 무비’가 2002년을 빛낼 우리 영화의 또 다른 ‘오아시스’라고 평가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범작”★★☆▼

“아저씨, 난 고향이 없어요. 어디서 태어난 줄도 모르고 어디로 가야할지도 몰라요.”

한국 영화사의 걸작으로 기록되는 이만희 감독의 ‘삼포가는 길’(1975)의 대사다. 영화에서 정씨와 영달, 술집에서 일하던 백화는 삼포라는 곳을 찾아 헤맨다.

우연의 일치일까? ‘로드 무비’도 거칠게 보면 ‘세 사람’의 영화다. 대식과 석원, 그리고 다방 아가씨 일주라는 인물이다. 입소문으로 알려진 대로, ‘로드 무비’는 남자들의 동성애에 무게중심이 놓인다. ‘로드 무비’는 시간의 격차만큼 변화했으며 또한 빠르게 이동 중인 한국 영화의 현재를 알린다.

‘로드무비’는 시각적으로는 훌륭하다. 영화에서 거리로 나선 대식, 그리고 펀드매니저라는 자리에서 추락한 석원은 정처없이 떠돈다. 이들은 도시를 벗어나 바닷가와 산을 부유한다. 영화에서 구름같은 아웃사이더의 이미지는 정교하게 포착되고 있다. 프레임 편집기법으로 장면을 손보는 방식으로 제작진은 근래 보기 힘들었던 몽환적인 시각 이미지를 빚어내고 있다. 한 장의 사진처럼, 먼 곳에서 보낸 그림엽서처럼 영화 속 장면은 수려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전형성에 갇혀버린 흔적이 있다. 인물 캐릭터를 제시하고 그들 심리를 드러내는 것에선 노련미가 부족하다.

영화 끝 무렵, 석원에게 “너는 화낼지도 모르겠지만 너 처음 봤을 때부터 사랑했다”고 말하는 대식의 대사는 낭만적 매너리즘의 전형은 아닐지.

대식이 처음 만난 어느 남자와 화장실에서 격렬한 성관계를 갖는 장면 역시 ‘동성애〓파격’의 관습적 구도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 내용보다, 과감하고 혁신적인 형식 실험에 주력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하긴 최근 한국 영화들은 너도나도 소재주의에 함몰되는 경향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로드무비’는 김인식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아쉬움은 남지만, 이 영화로 감독은 작가적인 문제의식을 노출시키는 것엔 성공했다.

▼로드무비는…▼

동성애자 대식(황정민)은 결혼해 아이까지 두었지만 뒤늦게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발견한 뒤 집을 나와 거리에서 살아간다.

어느날, 주가폭락으로 길거리에 나앉은 펀드매니저 석원(정찬)을 길에서 만나고, 대식은 만신창이가 된 석원을 돌봐주며 함께 여행을 떠난다. 여행 도중 흘러든 바닷가 변두리 마을에서 이들은 여자 일주(서린)를 만난다. 일주는 대식을 사랑하지만, 대식은 한사코 일주를 뿌리친다. 반면 대식이 동성애자임을 알게 된 석원은 그를 경멸한다. 엇갈린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세 사람은 여행을 계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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