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광복절 특사’ 꼬여버린 탈옥

  • 입력 2002년 11월 14일 18시 44분


사진제공 감독의 집
사진제공 감독의 집
《탈옥을 다룬 영화는 많았어도 감옥으로 도로 ‘기어 들어가는’ 영화는 없었다. 영화 ‘광복절 특사’에 담긴 역발상은 이 뿐만 아니다. 변심한 애인 때문에 탈옥을 결심하는 ‘순정파 양아치’ 재필 역을 진지한 이미지의 설경구에게, 빵 하나 훔쳐먹고 수감된 어눌한 절도범 무석 역을 세련된 모델같은 외모의 차승원에게 맡긴 것도 그렇다.》

이 영화의 김상진 감독은 기획단계 때부터 “‘쌈마이’ 영화의 결정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감옥으로 ‘유턴’하는 억지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두 주인공 때문에 더욱 그럴 듯하게 들렸다. 그러나 이 영화는 탄탄한 스토리와 두 주연의 연기로 ‘무조건 웃기면 최고’라는 한국 코미디 영화의 흥행 불문율을 비켜간다.

“나가야 하는 이유? 나가야 하니까!”

이것이 재필의 탈옥 이유다. 1년 2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단순 절도범 재필은 탈옥을 거듭하다 형량이 8년으로 늘어난다. 왜 나가야 하는 지도 모른 채 숟가락 하나로 6년동안 땅굴을 파던 재필은 고무신 거꾸로 신은 애인(송윤아) 때문에 화가 난 무석과 함께 탈옥을 감행한다. 자유의 기쁨도 잠시, 탈옥 다음날 아침 신문을 보던 이들은 자신이 광복절특사 명단에 끼어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탈옥 사실이 외부에 알려질까봐 고민하던 교도과장은 “돌아오기만 하면 없었던 일로 하겠다”고 약속한다. 재필은 한시 바삐 돌아가려 하지만 애인을 되찾기 전엔 돌아갈 수 없다고 버티는 무석 때문에 일은 꼬이기만 한다.

‘광복절 특사’가 기존 한국 코미디 영화보다 다소 ‘업그레이드’된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코미디에 드라마를 끼워 맞추지 않고 드라마에 코미디를 첨가했기 덕분이다. 즉 이 영화는 드라마적 구성이 탄탄한 코미디로 웃음을 자연스럽게 자아낸다.

김상진 감독과 박정우 작가 콤비가 만든 ‘주유소 습격사건’이나 ‘신라의 달밤’에 비해 웃음을 덜 쏟아내지만 최소한 ‘30초에 한 번씩 웃겨야 한다’는 코미디 영화의 고질적인 강박 관념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폭동을 일으킨 죄수들이 교도관과 대치하는 군중 신(Scene)과 인정에 호소하는 재필의 설득으로 양측의 갈등이 일순 해결되는 상황은 상투적이다. 교도소 시찰을 나왔다가 인질이 잡힌 국회의원들이 죄수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자신의 전과 기록을 털어놓는 장면은 정치인들에게 따끔한 일침을 놓으려는 세태 풍자에도 불구하고 세련되지 못했다.

‘신라의 달밤’에서 ‘잘생긴 배우도 코미디를 할 수 있다’는 역설을 보여준 차승원은 이번 영화에서도 진가를 발휘했다. 숟가락만 봐도 감정이 복받쳐 우는 그의 연기는 코미디임에도 진한 페이소스를 전한다. 진홍빛 광택 소재 양복을 입고 ‘분홍 립스틱’ 노래를 흥얼거리는 설경구의 양아치 연기도 “역시 설경구”라는 감탄을 자아낸다. 영화 후반에는 김상진 감독이 깜짝 출연하기도 했다.

전주공고 부지에 건설된 세트장에서 촬영된 이 영화는 광복절을 전후해 개봉할 예정이었으나 지난 여름 수해 때문에 촬영이 한달 이상 지연됐다. 8억원을 들여 제작된 교도소 건물 지붕이 강풍에 날아가기도 했다. 재필이 탈옥 직후 빵가게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빵을 먹는 장면은 계속되는 장마 때문에 여섯 차례나 다시 찍었다. 15세 이상 관람가. 22일 개봉.

김수경기자 sk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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