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영화 ‘선택’의 홍기선 감독(45)과 주연배우 김중기씨(36)는 누가 봐도 ‘잘한 선택같지 않은’ 일에 올 가을과 겨울을 바쳤다. 이 영화의 소재는 비전향 장기수로 45년간 옥살이를 했고 2000년 북한에 송환된 김선명씨의 일생. 촬영이 모두 끝나고 현재 후반 작업 중이며 내년 3월에 개봉될 예정이다.
남다른 소재를 고른 감독과 배우의 ‘과거’도 예사롭지 않다. 서울대 77학번(원자핵공학과)인 홍감독은 국내 최초 대학 영화패인 ‘얄라셩’을 만들었고, 졸업 후에는 영화운동 집단 ‘장산곶매’를 설립해 광주항쟁을 다룬 ‘오! 꿈의 나라’를 제작했다. ‘선택’은 그가 선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그린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92년)이후 10년 만에 만드는 영화다.
또 주인공 김선명 역을 맡은 김중기는 서울대 85학번(철학과)으로 전대협 남북청년학생회담 남측 대표단장 등을 지낸 열혈 운동권 출신. 94년에 연기를 시작해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 ‘북경반점’등에 출연했다.
두 사람은 혹시 요즘 같은 시대에 ‘선택’을 통해 ‘영화 운동’을 하겠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정작 이들의 대답은 묻는 사람이 민망할 만큼 심드렁하다.
“이런 소재가 미국에 있다면 할리우드에서 진작 영화로 만들었을 것이다. 갇힌 상황에서 한 인간이 갖는 자유에의 의지와 신념은 영화의 훌륭한 소재가 아닌가?”(홍)
“비전향 장기수들의 전향 거부 사유가 처음엔 사상이나 이념이었겠지만, 20년씩 지나면 자기 인생을 부정할 수가 없어서 그렇다고 들었다. 전향하면 자신의 존재 근거 자체가 박탈되어 버리니까. 이 영화는 그렇게 인간이 ‘자존’을 지키는 게 무엇인가를 다루는 영화다.”(김)
홍감독이 옆에서 “신념보다 오히려 운명이 이 영화의 주제”라고 부연설명을 한다.
“운명을 선택할 수 있다면 다시 이런 운명을 선택할 것인가를 묻는 영화다. 답? ‘나는 이 운명을 사랑한다’다. 자기 목표와 꿈에서 생겨난 운명이니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것 아닐까?”
홍감독은 이 영화를 3년 전부터 준비했으나 투자자를 찾지 못하다 영화사 신씨네(대표 신철)의 도움으로 시나리오의 묵은 먼지를 털게 됐다. 10년간 TV드라마 단막극 등을 쓰면서 지냈다는 그에게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사는 게 편해진다는 말도 있다”고 했더니 너털웃음을 터뜨린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게 어렵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싫은 영화 4,5편보다 ‘선택’같은 영화 1편 만드는 것이 더 행복하다. 그늘진 쪽 이야기를 다루는 것은 신념이라서가 아니라, 그런 쪽으로 관심이 자연스럽게 쏠려서다.”(홍)
신념 때문이 아니라 ‘나 좋아서 한다’는 것은 주연 배우도 마찬가지다.
“대학을 마치면서 행복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좋은 연기를 하는 배우를 보면서 처음으로 내가 살아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배우의 길에 들어서서 직진이 아니라 나선형으로 살고 있는데, 이 역할은 그 과정의 하나일 뿐이다.”(김)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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