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8명의 여인들’에는 다니엘 다리오, 카트린느 드뇌브, 이자벨 위페르, 엠마뉴엘 베아르, 화니 아당 등 프랑스의 국보급 여배우가 총출동해 연기대결을 펼친다. 프랑수아 오종 감독은 “스타들 간의 미묘한 경쟁 심리를 영화 속에서 풀어낸다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고 캐스팅 동기를 밝히기도 했다.
카트린느(뤼디빈 사니에)는 외할머니와 어머니, 아버지, 이모, 2명의 하녀, 언니 스종과 함께 살고 있다. 고모 피에레트도 가끔 찾아오는 이 집은 8명의 여인들의 자잘한 다툼과 수다로 조용할 날이 없다. 남자라곤, 아버지 한 명이 전부다.
크리스마스 아침, 카트린느는 아버지가 방에서 등에 칼이 꽂힌 채 숨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외부인의 침입 흔적은 없고 밤새 개도 짖지 않았다. 경찰에 신고하려 하지만 누군가가 전화선을 끊어 놓았고 때마침 폭설이 내려 8명의 여인들은 집 안에 고립된다. 이들은 내부자의 소행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서로 무죄를 증명하려 애쓴다.
폐쇄된 공간과 한정된 용의자 안에서 범인을 추리해내는 방식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을 연상시키지만 이 영화는 범인을 밝혀내는데 초점을 두기보다 그 과정에서 베일을 벗는 가족의 위선과 비밀을 부각시킨다. 결국 이 영화는 추리극 형식을 빌린 세태 풍자극인 셈.
지난밤 아버지는 방에서 8명의 여인들로부터 충격적인 고백을 듣는다. 부인은 동업자와 바람이 나 결별을 통고하고, 처제는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게다가 어린 딸은 임신했다고 말한다. 여기에 하녀와 피에레트 고모의 동성애 관계가 밝혀지고 또 다른 하녀와 남편은 내연 관계임이 드러난다.
살인은 물론 불륜, 미혼모, 동성애, 근친상간 등 민감한 소재가 나열되지만 이 영화는 추리극의 공포를 자아내긴커녕 유쾌하기까지 하다. 긴장감이 고조되는가 싶으면 갑자기 주인공들이 춤과 노래를 해 폭소를 터뜨리기 때문이다. 또 극 중 배경이 집안으로만 국한돼 있고 등장인물의 ‘오버 액션’이 어우러져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듯한 인상도 준다. 오종 감독은 “뮤지컬과 연극 등 영화 외적인 요소를 곳곳에 배치해 예기치 않은 즐거움과 엉뚱함을 제시하려 했다”고 말했다.
영화 마지막에 펼쳐지는 반전은 8명의 여인들 모두가 아버지를 죽인 공범이자, 가정을 붕괴시킨 공범임을 시사한다. 오종 감독은 가학적 소재와 도발적 영상으로 ‘유럽 영화계의 악동’이라 불리지만 이 작품은 그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대중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15세 이상 관람가. 10일 개봉.
김수경기자 sk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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