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캐릭터가 실제 ‘사람’ 에이전트를 거느릴 정도니, 사이버 배우가 실제 배우를 대체한다는 상상도 그리 황당한 일은 아닐 것이다. 영화 ‘시몬’은 그렇게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이야기를 다뤘다.
영화감독 빅터 (알 파치노)는 콧대 높은 여배우 니콜라 (위노나 라이더)가 영화 출연을 퇴짜 놓은 뒤 영화사로부터 제작 중단 통보를 받는다. 절망에 빠진 빅터에게 어느날, 그의 열혈 팬인 컴퓨터 엔지니어 행크가 CD를 보내온다. 행크가 죽기 전에 남긴 유품인 이 CD에는 실제 인간과 식별이 불가능할 정도로 정교한 사이버 여배우 시몬을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램이 담겨 있다. 빅터는 자신의 영화에 실제 사람 대신 시몬을 출연시키고, 영화는 대성공을 거둔다.
니콜라가 별 것도 아닌 일로 영화 출연을 퇴짜 놓고 빅터를 곤경에 처하게 한 반면, 개런티를 한 푼도 요구하지 않으며 매니저도 없고 대역도 요구하지 않는 사이버 여배우가 톱스타가 된다는 이 영화의 설정에는 현재의 할리우드에 대한 시니컬한 풍자가 깔려있다. 그러나 풍자의 칼날이 그 이상 나아가지 못한다는 점이 이 영화의 한계다.
각본을 쓰고 연출을 맡은 앤드류 니콜은 ‘트루먼 쇼’의 각본, ‘가타카’의 각본, 연출을 맡았던 감독. 테크놀러지의 발달과 개인의 행복은 비례할 수 있는지, 그 관계와 갈등 요소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던졌던 ‘가타카’와 ‘트루먼 쇼’에 비한다면 ‘시몬’은 의아스러울 정도로 단순한 영화다.
시몬이 인기를 얻으면 얻을수록 빅터는 점점 더 곤경에 처하게 된다는 것이 이 영화의 중심에 놓여있는 딜레마. 그러나 사이버 여배우 시몬이 스타로 승승장구하기까지의 과정이 지나치게 순탄하고 사람들이 너무 바보처럼 시몬이 실제한다고 믿어버리는 탓에, 보는 이가 빅터의 딜레마에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
빅터 역을 맡은 알 파치노는 대배우답게 노련한 연기를 보여준다. 그러나 지나치게 단순하고 뻔한 시나리오 탓에 알 파치노의 카리스마도 영화를 구원하진 못했다.
사이버 캐릭터 시몬을 연기한 여배우는 캐나다 출신의 모델 레이첼 로버츠. 그는 영화가 개봉될 때까지 자신이 시몬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겠다는 계약서에 서명을 했고, 영화 크레딧에도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사이버 배우가 실제 배우를 대체한다는 영화의 설정과 달리, 현실에서는 실제 배우가 사이버 배우의 대역을 한 셈이다. 원제 ‘Simone’. 15세 이상 관람가. 17일 개봉.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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