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피플]'영웅'개봉앞두고 訪韓, 예술영화거장 장이모우감독

  • 입력 2003년 1월 15일 18시 00분


사진제공 영화인

사진제공 영화인

예술영화의 거장으로 이름난 감독이 무협액션 영화를 만든다면?

칸, 베를린, 베니스 등 세계 3대 국제영화제가 모두 상을 헌납한 예술영화의 거장 장이머우(張藝謀)감독의 신작은 대형 스케일의 무협액션 영화 ‘영웅’이다.

리롄제(李連杰), 장만위(張曼玉), 량자오웨이(梁朝偉), 장쯔이(張子怡) 등 중국어권의 톱스타들을 망라하는 화려한 출연진에 ‘와호장룡’의 제작자 빌 콩, ‘와호장룡’의 음악감독 탄 둔, ‘화양연화’의 촬영감독 크리스토퍼 도일. ‘란’으로 아카데미 의상 디자인상을 수상한 에미 와다 등 스태프의 면면도 화려하다. 촬영에 투입된 인원만 6500명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이 영화는 지난해 12월20일 중국에서 개봉돼 개봉일 하루 동안 1200만위안(약 18억원)을 벌며 중국 역대 최고 흥행기록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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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골든 글로브 외국어영화상 후보에도 오른 ‘영웅’은 98분의 짧은 상영시간, 한껏 과장된 와이어 액션, 강렬한 화면의 색감 등 중국뿐 아니라 세계 시장을 겨냥해 만든 티가 다분하다. ‘영웅’의 개봉(24일)을 앞두고 한국에 온 장 감독을 14일 인터뷰했다.

―언제 처음 무협영화를 봤나. 장감독의 추억에서 무협영화는 어떤 이미지로 남아 있는가.

“처음 본 무협영화는 베이징 영화학교에서 본 이소룡의 영화다. 스릴이 넘쳤던 경험으로 기억하고 있다. 특히 자유로운 영혼이 천마가 나는 듯한 호방함으로 피비린내 나는 시기를 평정하는 무협영화 속 장면들은 영웅에 대한 동경같은 것들을 갖게 했다.”

―무협영화는 처음 만드는 것인데, ‘영웅’에서 다른 무협영화들과 어떤 차별성을 추구했는가.

“의경(意境), 즉 의미의 경지를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중국 무술문학들의 주요 소재는 늘 복수이다. ‘네가 내 스승을 죽였으니 이제 네가 죽어야 한다’는 식이다. 나는 무협영화를 다른 방향에서 접근하고자 했다. ‘영웅’의 테마는 폭력의 종결이다. 등장인물들의 진정한 행동 동기는 전쟁을 끝내고자 하는 소망이다. 진정한 무술의 대가, 영웅에겐 칼보다 가슴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배우들이 “감독이 지시하는 것이 거의 없어 당황할 정도”였다고 말하던데….

“중국 옛말에 ‘네가 완벽한 북을 연주하고 있다면 너는 북을 두드릴 필요가 없다’는 말이 있다. 그토록 출중한 배우들에게 내가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필요한 일은 아주 부드럽고 가볍게 툭 치는 것뿐이다.”

―주연 여배우인 장만위는 장 감독이 자신을 너무 자주 울게 했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스크린에서 우는 여성을 보는 일만큼 날 감동시키는 것은 없다. 그렇지 않은가?”

―‘영웅’은 ‘와호장룡’과의 비교를 피할 수 없을 듯하다. 동양적 허무주의에 바탕을 둔 ‘와호장룡’과 달리,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영웅’의 세계관은 국가주의적 이데올로기처럼 해석될 소지도 많다.

“무협 장르는 대개 나라를 위하고 백성을 위하는 ‘위국위민(爲國爲民)’ 정신이 중요 모티프다. 나 역시 그런 정신을 모티프로 스토리를 만들었을 뿐, 영화를 통해 내 세계관을 직접 발언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나 역시 전쟁이 없는 세상을 소망한다.”

―장 감독이 중국의 현실을 외면한다는 후배 감독들의 비판이 있다.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영화를 시작하면서부터 수없이 많은 비판의 목소리를 들었다. ‘영웅’도 마찬가지인데, 중국영화의 시장개척을 위해서는 할리우드 대작에 맞서는 큰 스케일의 영화가 나와야 한다고 주문하면서 그걸 비판하는 것은 모순이다. 어쨌건,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든 간에 나의 태도는 ‘사람들은 사람들대로 말하고, 난 내 할 일을 한다’이다.”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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