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이 영화 난, 이렇게 본다▼
★★★★
살다 보면 영원같은 하루가 있기 마련이다. 죽음의 시간이 삶의 시간과 겹치고, 파티를 위해 사온 꽃이 장례를 치장하는 장식이 되는 시간. 가능성의 사건이 현실이 되는 순간. ‘디 아워스’는 각기 다른 이 ‘하루’를 통과하는 세 여성의 삶을 날줄과 씨줄로 엮어 시간의 카펫을 짠다. 시간이 모여 세월이 되고, 개체 발생이 계통 발생을 되풀이하듯 하루는 전 인생을 대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 일일까? 이 복잡한 일이 어떻게 한 화면 안에서 가능한 일일까? ‘디 아워스’는 모든 영화적 요소의 ‘어우러짐’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영화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마이클 커닝햄의 소설, 데이비드 헤어의 군더더기 없는 각색, 줄리안 무어와 메릴 스트립, 니콜 키드먼의 내면 연기, 무엇보다 피터 보일의 편집과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차분한 연출까지. 카메라는 인물간의 심리적 거리를 정확히 감지하고, 컷과 컷 사이에서 과거와 현재가 자유롭게 넘나든다. 버지니아 울프가 소설 ‘댈러웨이 부인’에서 의식의 서술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다면, ‘디 아워스’는 편집이 시간을 만들어 내고, 시간이 의미를 만들어 낸다는 영화 교과서의 가르침을 정확히 구현하고 있는 셈이다.
무엇보다 ‘디 아워스’는 여자들의 이야기이다. 1951년을 살았던 평범한 가정 주부 로라는 1923년을 살았던 버지니아 울프가 가질 수 없었던 아이들이 있다. 또한 2001년을 사는 클라리사는 로라가 가질 수 없었던 동성애 애인과 동거한다. 그러나 이들의 처지는 왠지 데자 뷔(Deja vu) 현상이 일어나듯 엇비슷해 보인다. 여자들은 남자들을 위해 온 종일 파티 준비를 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것이 얼마나 되는지 물어 본다.
윤회를 거듭하는 듯한 여인들의 삶 속에서 영화는 세월의 손을 들어줄 뿐이다. 모든 것은 순간 위에 입을 맞추고, 삶이 지속되려면 누군가는 죽어야 한다. 버지니아 울프가 도도한 시간의 줄기인 워즈 강에 몸을 내어 맡긴 순간, 관객들의 겨드랑이 밑에는 실존의 푸른 날개가 돋을 것도 같다. 여인의 고통에서 인간 실존에 대한 사색으로. 그 한 순간을 위해 스티븐 달드리는 천 번 가위질하고 한 번 이어 붙이는 시간의 점프 컷에 승부수를 던진다.
‘디 아워스’가 지루하다거나, 타임지처럼‘여자들의 희생에 대한 감상적 접근’이라고 폄하한다면 이는 영화로 혹은 여자들이 사색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부류의 의견일 것이다. 살아온 시간을 직면하는 일, 과거를 돌아봄으로써 소금기둥이 될지라도 좀 보라고. ‘디 아워스’는 그렇게 진심 어린 충고를 해주는 지적인 친구같은 영화였다.
심 영 섭 영화평론가
★☆
심각하고 진지한 것이 좋은 것이라는 선입관은 거부하기 어려운 유혹이다. 영화에서도 ‘심각하고 진지하게’ 보이려는 노력의 역사는 길고도 끈질기다. 예술이 오락보다 훨씬 가치있고 중요하다는 인식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은 상을 줄 때다.
칸 영화제가 재미있고 경쾌한 영화에는 도무지 점수를 주지 않는 점이나, ‘재미있는 영화가 최고’라는 신념을 금과옥조처럼 가진 미국 영화계도 아카데미 상에서는 ‘진지한 예술성’과 ‘우아한 품격’을 가진 것같은 영화를 고른다. 이런 두 얼굴은 모두 ‘예술 콤플렉스’의 드러냄이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때로는 문학이나 연극의 모습으로 변장한 영화가 ‘좋은 영화’로 칭송받는 것도 마찬가지다.
‘디 아워스’는 서로 다른 시대를 사는 세 여자의 고통스럽고 우울한 삶을 그리고 있다.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쓴 작가 버지니아 울프, 그 소설에 매혹된 로라,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출판사 편집자 클래리사는 각각 다른 시대를 살지만 고통스런 삶을 무거워하고 있다는 점에서 닮았다.
이 영화는 같은 운명을 지닌 세 여자 또는 시대와 공간은 달라도 변하지 않는 인간의 근원적 외로움과 절망에 관한 묘사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을 연결하는 고리는 소설 ‘델러웨이 부인’이다.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에 존재하는 등장 인물을 같은 운명을 지닌 동일체로 인식하려면관객은 그것을 조합할 수 있는 몽타쥬 능력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등장 인물과 상황은 어지럽게 섞이는 토막에 그칠 뿐이다. 더구나 세 명의 주요 캐릭터가 보여주는 존재에 대한 번민과 성찰, 감성적 기억에 관한 회고는 어쩔 수 없이 관념적이다. 주인공들이 아무리 심각한 표정을 짓고, 눈물을 흘리더라도 장황한 대사가 없다면 그 또한 허탈한 몸짓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관객은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계속 긴장하며 논리적인 조각 맞추기 게임에 몰두해야 하고 주인공들이 쏟아내는 대사의 의미를 헤아려야 한다. 영화를 감상한다기보다는 지적 능력을 시험하는 노동을 해야하는 셈이다.
제작자나 감독이 이런 영화가 좋다며 만든 것은 선택의 문제이고 관객들이 좋아하는 것 역시 취향의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것이 좋은 영화이고 모든 관객이 봐야 하는 작품인 것처럼 ‘과장’하는 일은 지적 허영을 부추기는 일이다. ‘디 아워스’는 문학과 연극의 유전자를 더 가치있는 것이라고 믿는 지식인적 사치와 편견을 더 많이 담고 있는 영화제용 영화처럼 보인다.
조 희 문 영화평론가·상명대 교수
▼'디 아워스' 어떤영화?
‘디 아워스’는 1923년 영국에서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집필하는 작가 버지니아 울프 (니콜 키드먼), 1951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소설 ‘댈러웨이 부인’에 빠져 있는 주부 로라 (줄리안 무어), 그리고 2001년 미국 뉴욕에서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출판 편집자 클래리사 (메릴 스트립) 등 세 여인의 하루를 소재로 만든 영화.
99년 퓰리처상을 받은 마이클 커닝햄의 소설이 원작이다. 감독은 ‘빌리 엘리어트’를 만든 스티븐 달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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