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언론에서 현직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에 대해 절대권력을 마구 휘둘렀다는 뜻으로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그러나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말의 본뜻은 그것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애초 이 말은 미국 의회의 동의를 거치지 않고 자의적으로 대외정책을 결정하는 닉슨의 전제적인 리더십을 지적하기 위해 쓰인 말이었다. 그러니 소수파 정권의 수장으로 거대 야당에 끌려다닌 현 대통령에 대해 ‘제왕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그러나 그 같은 오용(誤用)의 측면에도 불구하고 문제제기라는 측면에서는 ‘제왕적’이라는 말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곱씹어볼 만하다. 즉 새로운 리더십의 전범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반면교사’로 삼을 수는 있어 보인다. 이는 단지 대통령이란 직위에 국한되지 않고 우리 사회 어떠한 조직에 대해서도 해당되는 얘기일 것이다.
특히 현대 기업의 성장이나 몰락을 들여다보면 리더가 얼마나 중요한지, 리더십이 얼마나 조직의 사활을 좌우하는지를 알 수 있다.
영화 ‘대부(The God Father)’를 본 사람이라면 1편에서 대부 돈 콜레오네가 라이벌 갱조직의 습격을 받아 조직이 일대 혼란에 빠진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콜레오네가 병원에 혼수상태로 누워 있는 동안 리더를 잃은 조직은 붕괴될 위기를 맞는다. 어린 아들 마이클의 기지로 아버지는 목숨을 구하지만 갱조직처럼 리더(두목)의 존재가 절대적인 집단도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기업이나 나라도 크게 다를 건 없다.
1997년 말 외환위기로 우리 국민이 엄청난 혼란을 겪어야 했던 것도 결국은 리더십의 부재 때문이었다. 한국경제가 왜 외환위기를 맞았는지에 대한 보고서 격인 ‘한국경제 실패학’이란 저서에서 백우진씨는 당시 외국 언론의 말을 빌려 “한국에 달러보다 부족한 것은 리더십이었다”고 꼬집기도 했다. 즉 한국호의 장래에 대한 리더의 비전도, 그런 비전을 뒷받침할 만한 단단한 조직도 없었음을 지적한 말이었다.
나폴레옹은 “리더는 희망을 전달하는 전령사”라고 했다. 영화 ‘콰이강의 다리’는 나폴레옹의 말에 대한 ‘해설서’다. 영화에서 오합지졸이던 영국군 포로들이 순식간에 강한 군대조직으로 변신하는 것은 리더가 비전, 즉 희망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타이의 밀림 속에서 영국군 공병대가 일본군 포로수용소에 잡혀온다. 일본군은 이들을 이용하여 콰이강에 다리를 건설할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일본군 수용 소장 사이토 대령과 영국군 공병대장 니콜슨 중령이 마찰을 빚는다. 마침내 니콜슨 중령은 영웅적인 지도력으로 일본군 수용 소장을 심리적으로 누르고 이후 포로들은 그들을 감시하는 일본군과 동등한 위치에 서게 된다. 리더 한 사람의 존재가 포로집단을 이렇게 탈바꿈시켜 놓은 것이다.
퇴임 이후 이런저런 스캔들로 체면이 많이 구겨지기는 했지만 ‘경영의 신’이라고까지 불리는 제너럴 일렉트릭사의 전 최고경영자 잭 웰치. 그의 자서전 ‘끝없는 도전과 용기’가 출간 수개월 동안 꾸준히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그가 보여준 리더십에 대한 관심의 크기를 보여준다. 웰치는 ‘중성자탄 잭’이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 무자비한 경영자로 불리기도 하고 그의 경영자적 자질을 깎아내리는 책도 많을 만큼 평가가 엇갈리는 경영자다. 미국에는 상당수의 ‘반웰치주의자’도 있다.
그러나 그런 부정적인 평에도 불구하고 그가 높은 평가를 받는다면 그건 GE의 자산가치를 높였기 때문이 아니라 리더로서 GE라는 회사의 조직과 조직원들에게 희망을 제시했기 때문일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5년여. 달러 보유고는 1000억 달러를 넘어섰다지만 한국사회의 리더십은 얼마나 진보했을까.
이명재 기자 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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