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피플]14일 국내개봉 ‘투 윅스 노티스’ 휴 그랜트

  • 입력 2003년 2월 13일 19시 48분


경박하고 시니컬해도 미워할 수 없는 바람둥이로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평정해온 휴 그랜트
경박하고 시니컬해도 미워할 수 없는 바람둥이로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평정해온 휴 그랜트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을 가장 많이 받을 것 같은 남자 배우를 고른다면?

단연 휴 그랜트다. 가볍고 무책임해도 미워할 수 없는 바람둥이의 이미지는 그의 새 영화 ‘투 윅스 노티스’에서도 여전하다.

“왜 변호사를 개인비서처럼 부려 먹느냐”는 루시(샌드라 불럭)의 항의에 그는 “나도 힘들어. 네가 온 다음에는 뭐든지 너한테 물어봐야 안심이 된단 말야”하고 엉뚱하게 책임을 떠넘긴다.

루시의 어머니가 “지나친 치부도 죄악이에요. 댁은 그러고도 잠이 오우?”하고 면박을 줘도 “아, 저는 파도소리를 틀어놓고 자는데요”하고 딴청을 피운다.

심각하고 불편한 상황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고 잔주름이 물결처럼 퍼져나가는 미소로 무거운 근심을 날려버리지만, 그렇다고 아무 생각이 없는 건 아니다. 루시의 ‘이념적 동지’인 애인보다 훨씬 더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잘 놀아주며, 그녀가 싫어하는 근대를 모두 자기 접시로 옮기는 자상함도 지니고 있다.

‘로맨틱 코미디의 왕’ 그랜트를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또 로맨틱 코미디다. 지겹지 않은가?

“내가 로맨틱 코미디를 선호하는 것처럼 보이는 모양인데, 나는 아마 지구상에서 로맨틱 코미디 대본을 가장 많이 거절한 사람일 거다. ‘투 윅스 노티스’의 대본도 기대없이 읽었는데 정말 끌렸다. 런던의 친구에게 대본을 보내주고 ‘내가 미쳤거나 술이나 마약에 취한 것일지도 모르는데, 너도 나처럼 이 이야기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니?’하고 물었다. 며칠 뒤에 친구가 ‘너 멀쩡해. 정말 재미있어’하고 대답해주더라.”

―‘투 윅스 노티스’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나?

“이 영화는 스펜서 트레이시와 캐서린 헵번이 주로 연기했던 과거의 로맨틱 코미디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헌사)다. 성격이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주인공들이 항상 다투면서도 사랑에 빠지는 그런 영화들 말이다. ‘투 윅스 노티스’는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으면서도 로맨틱 코미디의 황금기를 되돌아보는 영화다.”

―불럭과 함께 연기하는 촬영 현장은 어땠나?

“나는 촬영 현장에서 까다롭기로 악명이 높다. 1989년 이래로 현장을 즐겨본 적이 없는데, 이번엔 달랐다. 불럭은 함께 일해본 여배우들 가운데 최고로 웃긴다. 좀 유치한 유머 감각이 나랑 비슷하다. 한 장면 촬영이 끝나 카메라가 꺼져도 우리들끼리는 코믹한 연기를 계속하는 바람에 스태프들을 ‘기절’시킨 경우가 많았다.”

―‘로맨틱 코미디의 왕’으로 수년간 군림할 수 있는 비결이 뭔가?

“글쎄….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네. 이 영화의 주인공이 ‘나는 그저 매력적인 원숭이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나도 그런 것 같다. 어떤 면에서는 그게 내 비극인 거지.”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투 윅스 노티스’ 어떤 영화▼

미국 뉴욕의 부동산 재벌인 조지 웨이드(휴 그랜트)는 능력과는 상관없이 젊고 예쁜 여자들만 고문 변호사로 채용해 스캔들을 일으키는 바람둥이다. 반면 변호사 루시(샌드라 불럭)는 “다섯살 때부터 백악관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농담을 들을만큼 전투적인 환경운동가.

루시는 시민회관을 허물고 콘도미니엄을 세우려는 웨이드사의 프로젝트를 막기 위해 웨이드를 찾아갔다가 “고문 변호사가 되어주면 시민회관을 허물지 않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그러나 넥타이를 골라주고 여자문제나 상담해주는 고문 변호사 역할을 참다못한 루시는 웨이드에게 “2주간의 여유를 줄테니 다른 변호사를 구하라”고 최후통첩을 보낸다. 웨이드를 계속 타박하면서도 루시는 젊고 매력적인 다른 여자 변호사가 웨이드의 환심을 사자 야릇한 질투의 감정을 느낀다.

극과 극의 캐릭터가 자신도 모르게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그린 로맨틱 코미디. 두드러지는 점없이 범작에 그칠 뻔한 이 영화를 구원해주는 것은 로맨틱 코미디의 ‘달인’인 와 불럭의 연기 앙상블이다. 두 사람이 주고받는 재치있는 대사들도 흥미롭다. 뉴욕의 전경을 내려다보며 “꿈과 자본의 힘은 대단하다”고 감탄하는 대사처럼, 뉴욕에 바치는 헌사같은 영화. 감독은 ‘포스 오브 네이처’ ‘미스 에이전트’의 시나리오를 쓴 마크 로렌스. 원제는 ‘2주 전 통보’를 뜻하는 ‘Two Weeks Notice’. 전체 관람가. 14일 개봉.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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