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론가 입장에서
톱가수들이 그 상업성을 등에 업고 대중 영화의 주인공으로 출연하는 경우는 흔히 볼 수 있다. 이런 영화들은 흥행에 성공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 실패한다. 그 스타가 갖는 상품성에만 의존하기 때문이다.
21세기 엘비스 프레슬리로 불리는 에미넴이 주연을 맡은 영화 ‘8마일’에 이와 비슷한 잣대를 갖다대면 오산이다. 주인공의 스타성이나 소재의 대중성을 보자면 이 영화는 상업적으로 가공되기에 완벽한 조건을 갖췄다.
그러나 커티스 핸슨 감독은 이 영화를 값싼 영웅주의로 포장하기기를 거부했다.
핸슨 감독도 이야기했듯 이 영화는 단순히 ‘랩’에 대한 영화가 아니다. ‘랩’ 속에 담긴 저항정신을 통해 젊은이들의 실존적 고민을 냉철하게 담아냈다.
단순히 에미넴의 성공스토리로 결말을 맺었다면 영화의 본질은 훼손됐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대중영화가 오를 수 있는 높은 경지에 올랐다고 본다.
이 영화에 전혀 핸디캡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 흑인은 분명 사회적 약자인데, 성공한 백인 래퍼의 자전적인 이야기나 하는 것은 너무 태평하지 않냐는 지적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상업영화로서 가슴과 머리를 동시에 울리는 데 성공했다는 것은 가치를 인정할 만하다.
에미넴의 탁월한 연기는 많은 배우들을 좌절시킬 것이다. 그의 연기에는 존재감이 충실히 베어 있다. 자전적 이야기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는 평생 연기를 한 배우들도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심연의 고뇌를 단 한 편의 필모그라피로 표출했다. 연기사에 길이 남을 명연이다.
전찬일 영화평론가
●대중음악평론가 입장에서
영화 속에서 지미는 흑인의 주류 문화를 넘본다는 이유로 역차별을 당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주류와 비주류를 떠나 자본주의의 첨병인 미국이라는 ‘정글’에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인종을 불문하고 미국 하층민 젊은이들이 느끼는 좌절과 분노를 포괄적으로 그려냈다. 분노라는 명제 앞에 인종의 벽이 허물어지는 것이다.
국내 팬들에겐 낯선 ‘랩 배틀’을 도입해 기존 갱 영화의 대결 구도를 음악을 매개로 그려냈다는 점은 독특하다.
‘랩’의 장점은 직설적이라는 것이다. 남루한 삶을 토해내는데 이만큼 자연스런 수단도 없다.
힙합은 단순히 음악이 아니라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이다.
힙합바지와 춤, 그라피티 등 힙합을 대변하는 여러 장르의 예술을 총칭한다. 이 영화는 화면 가득 힙합 문화의 다양한 점들을 소화했다.
그러나 힙합 뮤지션 ‘스눕 독’이 출연한 ‘어번 메니스’(Urban Menace·1999)나 스파이크 리 감독의 ‘똑바로 살아라’(Do The Right Thing·1989)와 달리 ‘8마일’은 흑인들의 절박한 현실에 대해서는 초점을 흐렸다.
이 때문에 이 영화가 얼마나 힙합 정신의 정수에 다가섰는지는 의문이다. 백인 사회에 대해 느끼는 백인의 박탈감이 아무리 커도 백인 중심의 미국 사회에 대해 흑인이 느끼는 그것보다 클 수는 없기 때문이다.
‘8마일’은 영화 ‘증오’(La Haine·1995)에서처럼 주류로 태어났으면서도 주류에 들지 못하는 백인 청년의 분노를 표출했으나, ‘증오’가 제기한 문제의 틀을 넘어서진 못했다.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어떤 영화…▼
공장근로자 지미 스미스 주니어(에미넴)는 힙합만이 암울한 삶의 유일한 탈출구라 믿지만 백인이라는 이유로 역차별을 당한다. 그는 ‘랩 배틀’(두 명의 래퍼가 독설이 담긴 가사로 상대방을 공격해 승부를 가리는 것)에서 그동안 억눌렸던 울분을 한꺼번에 폭발시키며 관객들의 환호를 받는다. 제목 ‘8마일’은 디트로이트에서 백인과 흑인의 거주지역을 가르는 경계가 되는 도로. 18세 이상 관람가. 21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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