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미국에서는 미시간주립 대학의 흑인 우대 입학제가 논란이 됐다. 한 가지 흥미로웠던 건 흑인사회 내의 반응이었다. 백악관 안보보좌관인 콘돌리자 라이스는 나중에 번복하긴 했지만 이 제도에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그런 그를 인권운동가인 제시 잭슨 목사는 맹렬히 비난했다.
흑인사회도 이제 그만큼 다양해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건이었다. 물론 아직도 흑인은 미국에서 하류 빈민계층을 형성하는 인종이다. 그러나 그 내부에서는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에 따라 분화가 진행되고 있다.
영화는 이 같은 흑인 위상의 변화를 시대별로 잘 보여준다. 실제에서나 영화에서나 흑인들이 주로 맡는 배역 중의 하나는 운동선수다. 스포츠 무대는 흑인이 완전히 장악한 분야다. “육체적인 면에서 흑인이 백인보다 우수하다”는 과학적 분석도 나오고 백인의 육체적 열등성을 비꼰 ‘백인은 덩크슛을 못해’라는 영화까지 등장할 정도다.
그러나 이렇게 운동선수는 흑인들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감독 자리는 오랜 기간 흑인들에게 금지구역이었다. 그 금지구역에 도전한 한 흑인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가 있다. 작년에 국내 개봉된 ‘리멤버 타이탄’(사진)은 타이탄이란 단어 때문에 ‘타이타닉’의 속편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사실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흑백갈등을 다룬 영화다.
타이탄은 미국 버지니아주의 한 고교 미식축구팀 이름이다. 1971년 주 교육청은 백인학교와 흑인학교를 통합한다. 그 결과 생겨난 학교 축구팀이 타이탄이다. 흑백학교 통합이나 흑백 운동팀 자체도 갈등의 씨앗인데 이 팀에 흑인 코치가 부임한다. 게다가 그전의 백인 감독은 부코치로 밀려난다. 실화를 어느 정도 살렸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후 이어지는 이야기는 할리우드 공식에 따라 흘러간다. 거센 논란과 갖은 역경을 딛고 흑인 코치는 팀을 정상급의 강팀으로 키우고 흑백이 화합한다는 감동에 충실한 스토리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인 1971년은 흑인 인권의식이 신장되던 시기다. 60년대 중반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주도한 흑인인권운동이 나라 곳곳에 영향을 미치면서 사회를 변화시키고 있었다.
‘리멤버 타이탄’에서 보여지는 정서는 흑인이 선수로 뛰는 건 용납할 수 있어도 ‘지도자’로 모실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게 70년대 초 백인사회의 일반적인 분위기였다. 지금 그런 거부감은 많이 희석됐다. 물론 아직도 흑백차별은 심하다. NBA와 미식축구판에서 흑인 감독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변화의 싹은 분명히 트고 있다. 작년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에 팀을 진출시킨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감독이 바로 흑인인 것처럼.
흑인들이 영화에 비중 있게 등장한 것도 ‘리멤버 타이탄’의 시대적 배경이 된 70년대 초부터다. 최근 영화에선 흑인 주인공을 흔히 볼 수 있다. ‘원나잇 스탠드’처럼 흑백 커플을 등장시킨 영화도 나올 정도다.
영화에서의 흑인의 위상을 높여준 것은 무엇보다 흑인들의 강해진 경제적 파워다. 그만큼 구매력이 커지고 흥행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흑인 관객만을 겨냥한 영화도 하나의 장르를 형성하고 있다. 영화 속 흑인의 직업만 해도 갱단 아니면 운동선수 정도가 고작이었던 것이 현실을 반영해 변호사 의사 등 오피니언 리더 계층으로 넓어지고 있다.
최초의 장편영화로 영화사에 기록되고 있는 ‘국가의 탄생’ 같은 작품은 이제 흥행만을 생각한다면 다시 보기 힘들게 됐다. 이 영화에서 흑인은 노골적인 적의의 대상으로 그려졌다. 개봉 당시 흑인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지만 이런 영화가 용납될 수 있었던 게 당시 시대상황이었다. 흑인들의 보이콧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당시 기록으로 사상 최대의 흥행실적을 올렸다. 영화를 볼 수 있는 흑인 관객이 별로 없었으니 영화사로서도 흥행 손실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이명재 기자 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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