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일어난 9·11테러가 앨범의 씨앗이 됐다고나 할까요. 불안한 세계 정세 가운데 곳곳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들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듣는 이마다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는 그런 노래를 부르고 싶었어요.”
그는 1963년 결성된 남성 5인조 그룹사운드 ‘키보이스’의 멤버로 가수 생활을 시작했다. 이어 1973년 솔로로 데뷔해 ‘장밋빛 스카프’ ‘친구야’ ‘나는 어떡하라고’ 등을 발표했고 1979년 동생 복희씨와 함께 ‘여러분’으로 서울국제가요제에서 대상을 타기도 했다.
“참 인기가 많았지요. 돈도 많이 벌었고요. 아내 속도 어지간히 썩였나봐요(웃음). 그러나 음악의 참 의미를 깨닫지 못했어요, 그때는….”
결국 그는 ‘하나님의 길’ 위에서 노래하기로 결심한다. 신학교에 입학해 교회음악 과정을 마친 뒤 미국으로 건너가 미드웨스트 신학대학원에서 1995년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그는 자신과 치열한 싸움을 벌여야 했다.
“신학 공부하는 일이 정말 쉽지 않았어요. 끊임없이 후회하고 갈등했지요. 내 맘대로 자유분방하게 살아 왔는데 하나님의 뜻에 묶여 살아야 하고, 세상의 재미를 끊어야 했으니까요. 목회자로서 직면하게 될 경제적 두려움도 있었고요.”
어려운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그는 ‘음악’을 통해 사역하는 후학을 양성하기 위한 음악신학교 설립을 꿈꿔 왔다. 그리고 지난해 봄 드디어 교육부에서 학점을 인정하는 ‘예음음악신학’을 일궈냈다.
“지금 제게 주어진 일은 기독교문화의 저변을 넓히는 일과 진정한 가치가 있는 음악을 하는 것이에요.
또 대선배가 20, 30대 젊은이들 못지않은 정열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려주고 싶고요. 이제서야 하나님께서 제게 노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것 같아요. 지금 제 모습에서 예전의 ‘인기인’ 윤항기를 떠올리기 어렵죠? 미련을 못 버리고 유혹에 끌릴까봐 외양도 달라지게 하셨나봐요.”(웃음)
그는 새 음반 발표를 기념하는 콘서트를 5월에 동생 복희씨, 조하문 목사와 함께 열 계획이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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