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 사람들’(MBC)로 명맥을 이어오던 재연 프로그램은 2001년 말 ‘타임머신’(MBC)이 신선한 관심을 끌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최근엔 ‘솔로몬의 선택’(SBS) ‘두뇌쇼! 진실 감정단’(KBS2) 등 10여 개 프로그램이 진행 중. 진지하면서도 어설픈 연기가 재연 배우들의 경쟁력이다. 끔찍한 사건이나 딱딱한 법률상식 등을 이들은 코미디를 보듯 쉽고 재미있고 용감할 정도로 간단하게 풀어낸다.
‘타임머신’으로 재연 배우의 길에 입문, 현재 10여 개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구중림씨(34)를 10일 만났다.
―재연배우가 각광받는 이유는.
“시청자는 우리를 통해 삶의 복잡한 이야기를 부담없이 즐기는 것 같다.”
―얼마나 일하며, 얼마나 버나.
“한 달에 15∼20일 일한다. 250만∼300만원쯤 번다. 이중 소속 기획사에 수수료 주고 교통비 식대 떼고 나면 절반 조금 넘게 남는다고 보면 된다. 당장 돈 벌려면 이거 못한다.”
일정수준에 올라 ‘연기자 등급’을 받는데 성공한 재연배우는 50분 프로그램 기준 1회 출연에 30만원 남짓, ‘등급’을 받지 못한 배우는 15만원 남짓 받는다. 이들은 보조출연 전문업체에 등록해 방송사에 캐스팅되거나 다소 경력이 쌓이면 제작자들이 직접 부르는 방식 등으로 프로그램에 출연한다.
‘재연배우’라는 직종은 따로 없다. 굳이 분류하자면 ‘무명 배우’에 가깝다. 반면 엑스트라는 ‘보조출연자’다. 재연배우는 단막극의 주인공으로 자기 캐릭터를 보여준다. 엑스트라는 캐릭터도 대사도 별로 없이 주인공을 빛내주기 위해 존재하는 주변 인물이다.
―재연배우로 성공하려면.
“순발력이 관건이다. 대본을 받는 즉시 자기 역에 맡은 캐릭터를 잡아야 한다. 바람둥이라면 짐 캐리의 손동작 발동작 하나하나를 ‘오버’해서 연습하는 식으로….”
―언제 ‘오버’하나.
“대본에는 어느 대목에서 과장된 연기를 해야 하는지 써있지 않다. 진지하게 나가다가 사람들이 ‘웃기겠지’하고 예측하는 대목에서 참아야 한다. 웃기지 않는다. 이후 시청자가 긴장을 놓을 때 ‘이때다’ 하고 ‘오버’한다. 그게 코미디와 다른 점이다.”
재연배우들은 얼굴이 알려지지 않아 극중 리얼리티를 살리는데 효과적이다. 하지만 잦은 출연으로 얼굴이 알려지면 쓰임새가 줄어든다. 구씨는 “나도 ‘물갈이’될 것이다. 대신 바로 그때가 고유 캐릭터를 각인시켜 드라마 ‘조연’으로 나설 시기”라고 했다.
―자신의 고유 캐릭터는 뭔가.
“없다. 재연배우는 고유 캐릭터를 갖는 순간 생명이 끝난다. 뚜렷한 캐릭터가 없어야 형사도 하고 강도도 한다.”
재연배우 중 일부는 얼굴이 알려진 것을 이용해 보험설계사로 나서거나 옷가게나 음식점을 내기도 한다. 새마을금고 대부계 출납계 직원, 건설현장관리직을 지낸 구씨는 “10년은 내다보고 참아야 한다. ‘연기가 좋아서’가 아니면 이거 못한다. 다 걸어야 한다. 올인”이라고 말했다.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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