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개봉될 판타지 액션 영화 ‘데어데블 (Daredevil)’은 그간 영화화된 만화의 슈퍼 히어로 가운데 계보를 찾자면, 외계인이었던 ‘슈퍼맨’보다 인간적 약점을 지닌 평범한 뉴요커인 ‘스파이더 맨’쪽에 더 가깝다.
‘데어데블’은 1964년 출판된 미국 ‘마블 코믹스’의 만화가 원작. 스파이더 맨처럼 데어데블도 어린 시절 부모를 잃었으며 우연한 사고로 초인적 능력을 얻는다. 사고로 방사능 폐기물에 노출돼 시력을 잃은 대신 몸의 감각들이 비상한 능력을 갖추게 되는 것. 매튜 머독 (벤 애플렉)은 낮에는 약자를 돕는 변호사, 밤에는 ‘정의를 수호하는 악마’인 데어데블로 살아간다. ‘선수’끼리 서로 알아보듯 그는 ‘무술의 달인’인 엘렉트라 (제니퍼 가너)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아버지에 대한 집착 때문에 심리학 용어에까지 그 이름이 쓰인 그리스 신화 속 엘렉트라처럼, 엘렉트라는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의 원수를 데어데블로 잘못 알고 복수를 벼른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음산한 뉴욕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는 종교적 이미지가 가득하다. 첫 장면에서 데어데블은 피를 흘리며 성당 지붕의 십자가에 매달려있고, 민감하게 발달한 청력을 잠재우기 위해 물을 채운 관이 그의 침대다.
그러나 숱한 은유와 복선이 인물의 감정과 캐릭터 묘사에 섞여 들어가지 못하고, 밑그림에 그치고 만 것이 이 영화의 한계다.
‘배트맨’과 ‘스파이더 맨’을 섞어놓은 듯한 분위기이나 이 영화는 어둡고 음산한 ‘배트맨’의 배경과 건물 사이를 날아다니는 ‘스파이더 맨’의 쾌감 사이에서 길을 잃은 듯하다.
영웅이 지나치게 ‘인간적’이면 영웅적 카리스마가 빛이 바랜다. 데어데블은 증인의 심장 소리만 듣고도 위증 여부를 가려낼 정도의 능력을 가졌는데도 낮의 그는 무능한 변호사처럼 묘사된다. 이 때문에 밤의 복수도 낮의 패배에 대한 분풀이처럼 보인다.
엘렉트라 역을 맡은 제니퍼 가너의 감정 연기가 너무 단순해 코믹하기까지 한 것도 영화의 격을 떨어뜨렸다.
데어데블은 범죄 왕 킹핀(마이클 클락 던컨)을 처단할 수 있는 마지막 순간에 그를 살려둔다. 왜?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니까”. 데어데블을 좇던 신문기자는 그의 정체를 알고도 기사를 쓰지 않는다. 왜? “도시엔 늘 영웅이 생겨나는 법”이기 때문.
그러나 두 사람의 정확한 속마음은 아마 이런 것 아닐까. “속편 만들어야 되잖아!”
감독은 ‘사이먼 버치’로 데뷔한 마크 스티브 존슨. 원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 15세이상 관람가.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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