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피플]‘스캔들-조선남녀…’ 스크린 첫 나들이 배용준

  • 입력 2003년 3월 16일 19시 17분


충무로에서 배용준의 영화 데뷔 소식은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젊은이의 양지’ ‘겨울 연가’ 등 TV 드라마를 통해 톱스타 반열에 오른 그는 데뷔이후 9년간 영화계의 끊임없는 러브 콜을 고사해왔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선택한 시나리오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18세기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바람둥이와 요부가 정절녀를 타락시키는 사랑 게임을 벌인다는 내용으로 배용준 이미숙 전도연이 공동 주연이다. 배용준은 트레이드 마크였던 안경도 벗고 ‘바람머리’ 대신 상투를 틀어야 하는데다 그동안 쌓아온 부드러운 남자 이미지 대신 바람둥이 역을 연기해야 한다.

소감을 묻자 “얼떨결에 시작했는데, 뭐 어쩌겠어요”라며 웃는데, 옆에 있던 이미숙이 한마디 한다.

“배용준씨는 촬영장에 오면 죽고 싶대요. 어쩌면 순직할 지도 몰라요.”

기대에 따른 심리적 부담이 촬영장에 있는 다른 배우들에게도 전해지는 것 같다. 배용준은 크랭크 인에 들어가기 전날 밤, 이재용 감독을 찾아갔다. 상대역인 이미숙과 전도연이 모두 인정받는 연기파 배우인데, 처음 스크린에 등장하는 자기 연기가 상대적으로 위축되지 않을까 하는 고민 때문이다.

배용준은 그동안 ‘이미지’로 승부했을 뿐 인상적인 연기를 펼치지 못했다는 게 방송가의 중평. 게다가 바람둥이 캐릭터나 사극은 낯설다. 이 감독은 “인물 자체의 캐릭터가 강한 배우보다 ‘손이 아름다운 남자’라는 점에서 그를 선택했다”며 “담백한 캐릭터가 역설적으로 에로 분위기를 더 짙게 발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 배용준의 변신을 우려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한 영화관계자는 “먼저 자신있는 장르의 영화로 호흡을 고른 뒤 변신을 꾀해도 늦지 않다고 조언했지만 변화에 대한 본인의 욕구가 컸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영화사로부터 100여편의 시나리오를 받았다는 소문이 있었다.

“과장입니다. 한 80편정도?(옆에서 전도연과 이미숙이 시샘하듯 눈을 흘긴다)”

들어온 시나리오의 90%는 멜로물이었다. 그의 이미지가 부드러운 귀공자로 굳어졌기 때문이다. 재벌집 아들에 영화 감독 지망생(‘젊은이의 양지’), 유학파 M&A 전문가(‘호텔리어’), 건축설계사(‘겨울연가’) 등이 그가 연기했던 배역들.

배용준은 그러나 “TV에서 보여주지 못한 모습을 담을 수 있는 영화를 원했는데 시나리오마다 멜로여서 고민했다”며 “‘스캔들’의 시나리오를 보는 순간, 기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 영화는 프랑스 소설 ‘위험한 관계’를 각색한 것이다. 배용준이 맡은 조원 역은 호탕한 남성미와 섹시한 카리스마로 나비처럼 뭇 여성을 옮아다니지만 마음속으로는 진실한 사랑을 갈구한다.

“조원이요? (시조를 읊듯)문무에 능하지만 벼슬을 마다하네…. 냉철하고 야비한 속성을 넉살좋은 유머로 포장하죠.”

젊은 배우들이 사극에서 애먹는 부분은 고어투의 대사. 고어가 생소하고 어투도 달라 NG내기 일쑤다.

“대사 때문에 애먹어요. 제 말투가 부드러운데다 그동안의 배역도 조용조용했잖아요. 게다가 매일 상투를 트는데 머리를 어찌나 조이는지, 얼마전엔 CF 촬영이 있었는데 상투 모양대로 이마에 피멍이 들어 메이크업하느라 진땀뺐죠.”

그는 최근 생식을 하며 7kg을 뺐다.

“영화에 ‘요씬’이 좀 있어요. 침대에서 하는 게 아니라 요에서 하니까 ‘베드씬’이 아니라 ‘요씬’이죠. 옷을 벗게 되니까 스크린에 비칠 몸매가 걱정되더라고요. 조선 시대가 배경이니 근육을 키울 수도 없고. 결국 살을 빼는 수 밖에 없었죠.”

촬영한 지 두달이 되면서 조원이라는 캐릭터에 익숙해진 그는 ‘바람둥이 되는 법’을 한가지 터득했다.

“바람둥이는 모름지기 부지런해야 해요. 시간을 쪼개 써야하고. 아무나 하는게 아니죠. 얼마나 바쁜데요.”

김수경기자 sk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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