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경제이야기]‘천국의 아이들’

  • 입력 2003년 4월 4일 17시 27분


◇ 석유 부국의 가난한 국민 … 富는 지배계급에 집중

TV로 ‘중계’하는 이라크전쟁 화면을 보면서 전장의 참혹함과 함께 눈길을 사로잡는 장면이 있었다. 포로로 잡힌 이라크 군인들의 ‘군인 같지 않은’ 행색이었다. 그들은 군복도 없이 전쟁에 나섰다. 개인장비를 제대로 갖춘 모습도 볼 수 없었다. 엄청난 화력으로 이라크 국토를 초토화하고 있는, 첨단무기를 자랑하는 미군과는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중동의 최강 전력을 자랑한다는 이라크 군대는 위용을 느끼게 하기는커녕, 차라리 연민을 자아낼 정도였다.

이라크 군대의 초라한 행색이 보여주는 것, 그건 다름 아닌 ‘가난한 이라크’였다. 대체 중동 제2의 산유국이라는 나라에서, 펑펑 솟아나는 석유를 팔아 들여오는 그 많은 오일달러는 다 어디로 가는 걸까. ‘중동 산유국=부유한 국가’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던 사람이라면 그런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런 의문은 중동의 경제현실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중동에 있는 나라라고 다 산유국이 아니듯 산유국이라고 해서 다 부자나라인 것도 아니다. 또 부자나라라고 국민들이 모두 잘사는 것도 아니다.

이라크 군인들의 누추한 행색은 ‘천국의 아이들’(사진)이라는 이란 영화를 떠올리게 했다. 그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오랫동안 훈훈한 여운이 남았을 것이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어린 소녀 자라가 집으로 급하게 달려간다. 슬리퍼를 신고 집 앞까지 나와 애타게 기다리던 오빠 알리는 여동생과 신발을 바꿔 신고 학교로 정신없이 달려간다. 영화는 운동화 한 켤레를 놓고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을 통해 수채화 같은 이야기를 그려낸다.

그러나 필자는 한편으로 그 영화에서 ‘가난한 이란’의 현실을 보았다. 주인공 남매의 가족들은 단칸방에서 힘겹게 살아간다. 성실한 아버지는 하루종일 쉴 틈 없이 일하지만 살림은 집세를 내지 못할 정도로 쪼들리기만 한다. 역시 같은 의문이 든다. ‘이란도 산유국인데 왜 그렇게 가난한가’.

호텔에서 팁으로 수천 달러를 마구 뿌리고 다닌다는 중동의 부호들, 군복도 배급받지 못한 이라크 군인, 운동화 한 켤레 살 돈이 없는 ‘천국의 아이들’의 남매. 이중 어느 쪽이 중동 국가 국민의 일반적 현실에 가까운 것일까.

이들 모두 중동의 나라들에 공존하는 측면이다. 소수의 부자가 있긴 하지만 중동 산유국의 경제현실은 대부분 그리 좋지 못하다. 나라 전체의 부의 크기나 국민 생활수준을 놓고 본다면 ‘부유한 중동국가’라는 이미지는 오해에 가깝다.

무엇보다 중동이 석유로 돈을 번 기간 자체가 그리 길지 않다. 미국 영국 등의 메이저 석유자본 지배하에 있던 유전을 아랍국가들이 국유화한 것은 1970년대 이후의 일이다. 그러니 석유가 중동국가들의 국고로 들어온 건 기껏 해봐야 30년 정도다.

그나마 80년대 이후 석유가격이 하락하면서 수입이 크게 줄어들었다. 예를 들어 중동을 대표하는 부자나라로 알려진 사우디아라비아는 국민소득이 10년 전의 절반 수준인 1만 달러로 떨어졌다. 이라크의 1인당 국민소득은 1000달러 안팎이다. 게다가 그 부는 소수의 왕족이나 지배계급에 집중돼 있다. 빈부격차가 극심해 일반 국민들이 느끼는 상대적 빈곤감은 국민소득 수치보다 훨씬 더하다.

알 카에다나 헤즈볼라 등 아랍의 테러조직들의 뿌리도 그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부와 권력을 독점하는 소수 지배층에 대한 반감에서 나왔다. 또 테러가 반미를 겨냥하게 된 건 이들 중동의 독재정권을 미국이 지지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에서도 이라크나 중동의 다른 나라 국민들이 ‘해방군 미군’을 반기기는 힘들 듯하다.

이명재 기자 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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