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개봉될 ‘볼링 포 콜럼바인’은 그가 카메라를 무기 삼아 미국 총기문화의 실상을 들추어내고 폭력의 뿌리를 파헤친 다큐멘터리. 초등학교 1학년생이 학교에 총을 가져와 같은 반 여자아이를 쏘고, 대형 슈퍼에서 누구든 총알을 살 수 있는 환경, 더 나아가 미국의 침략상을 보여주면서 타인에 대한 공포에 대항하는 도구로서 폭력에 세뇌된 미국인들의 어두운 이면을 신랄하게 비꼰다.
이 영화의 돋보이는 점은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다는 것. 무어의 저돌적 인터뷰와 풍자는 코미디 영화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웃음을 자아낸다. 영화의 제목은 99년 미국 콜럼바인 고교에서 총기를 난사했던 두 고교생이 사건당일 아침 볼링을 치러갔다는 데에서 착안한 것. 콜럼바인 사건이 폭력적인 영화와 비디오 게임, 헤비 메탈 때문이라고 진단했던 미국 ‘지도층’에게 “그럼 볼링 때문일 수도 있겠네?”라고 비꼬는 뉘앙스의 시니컬한 제목이다.
마이클 무어 감독을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영화가 충격적이면서도 신랄하게 웃긴다. 진지함과 유머의 균형을 잡는 일이 어려웠을 것 같다.
“비극적 사건을 다룬 영화를 어떻게 코미디라고 부를 수 있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나는 콜럼바인 사건을 갖고 농담하는 게 아니다. 그건 농담거리가 아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나서기 두려워하는 부분을 건드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유머와 풍자가 그 대목에서 중요해진다. 유머 감각은 엄청난 힘으로 작용할 수 있다.”
무어 감독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학교신문을 만들어 압수당한 전력이 있을만큼 과격한 ‘좌파’다. 지난해 38주동안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책 ‘멍청한 백인들’의 저자이기도 하다.
―영화와 책은 감독 스스로 백인이자 미국인임을 부끄러워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준다.
“사실 미국인들은 내 영화에서 묘사된 것보다 괜찮은 이들이다. 미국인들의 단순함과 솔직함, 개방성은 매력적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모이기만 하면 세상을 괴롭히고 해를 끼치는 걸까. 선량함이 개별적 차원에 머물고 마는 것이 문제다. 나는 미국인 개개인의 선함이 ‘전체로서의 우리’에게까지 확장돼 미국이 세상에 해를 끼치지 않았으면 한다.”
―영화에서 강도 높은 현실 비판이 소수의 불만으로 보일 수도 있다.
“미국에서 이 영화 상영 4주 째가 됐을 때 관객 설문 조사를 했는데 50% 이상이 이전까지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간 적이 없다고 응답했다. 이런 종류의 영화에 대한 예상보다 더 넓은 범위의 관객층에 도달했다는 표시다. ‘멍청한 백인들’도 2002년 비소설 부문중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이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내가 미국에서 주변부 인간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서다. 나는 다수에 속한다. 다수로서 우리는 불만으로 가득 차 있고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이 탐탁지 않다.”
―제작시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는지.
“대기업 대표나 미국총기협회의 찰톤 헤스톤 회장을 인터뷰하러 가는 게 싫다. 위가 꼬일 정도다. 영화 속에서 내 모습을 보는 것도 역겹다. 미국 언론들은 모두 어떻게 돼버린 것 같다. 총알을 파는 대형 슈퍼의 대표나 폭력을 맹신하는 집단으로 변질된 미국 총기협회 회장에게 곤란한 질문을 던지는 일을 왜 내가 해야하는지 모르겠다.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됐다.”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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