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론가들만 호평? ‘지구를 지켜라’ 흥행 참패

  • 입력 2003년 4월 10일 17시 58분


평단으로부터 만장일치에 가까운 지지를 받았지만 흥행에서는 참패한 영화 ‘지구를 지켜라’ 동아일보 자료사진
평단으로부터 만장일치에 가까운 지지를 받았지만 흥행에서는 참패한 영화
‘지구를 지켜라’ 동아일보 자료사진

‘평론가들이 칭찬하는 영화는 재미가 없어 안본다’는 영화계의 속설이 맞아떨어지기라도 한 건가. 지난 주말 개봉된 영화 ‘지구를 지켜라’가 평단에서는 5개가 만점인 별점 평가에서 4점 이상씩을 받으며 만장일치에 가까운 호평을 받은 반면, 관객들로부터는 무참할 정도로 외면당했다.

지난 주말 서울에서 이 영화를 본 관객은 1만1000명. 전국을 다 합해도 이 영화를 본 관객은 4만명이 안된다. 흥행성적이 이처럼 부진하자 극장들마다 속속 간판을 내려 이번 주말에는 극장에서 거의 사라질 전망이다. 왜 그럴까.

4월초 극장 관객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0% 가량 줄어드는 바람에 비수기 불황에 직격탄을 맞았다는 분석도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영화 자체에서 찾아야 할 듯하다.

영화평론가 김영진씨는 “이 영화가 관객을 ‘습격’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제목은 경쾌한 코미디인데 그건 외피에 불과하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사실적이고 무거우니까 관객이 당황스럽다. 웃음과 무거운 사회비판, 하드고어적인 요소가 계속 충돌하니까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헷갈리는 거다. 영악한 대중영화라면 호흡을 늦추고 관객의 부담을 덜어줬겠지만, ‘지구를 지켜라’는 영화적 의미가 있고 완성도가 높을지언정 대중영화로서는 0점이다.”

영화평론가 심영섭씨도 “미국영화를 많이 본 비디오 세대의 감수성에 기반한 영화라 감수성의 뿌리가 한국적이지 않다. 20년 뒤쯤 되면 ‘컬트 영화’ ‘저주받은 걸작’으로 불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영화가 소수가 열광하는 컬트영화가 되기엔 너무 ‘비싼’ 영화라는 것. 순제작비가 35억원, 마케팅 비용이 10억원 이상 들었다. 이는 산업적 측면에서 생각해볼만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김영진씨는 “독창적 영화를 만든 시도는 높이 사지만 작가적 욕망과 제작 시스템은 일정한 긴장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대중적 공감의 획득을 목표로 하지 않는 ‘작가주의 감독’들도 40억 원짜리 영화를 찍고 마케팅을 대대적으로 하면서 관객 200만 명을 목표로 삼는 것은 일종의 나르시시즘, 과대망상”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지구를 지켜라’의 흥행 참패는 영화의 성격에 따라 서로 다른 게임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고 제작과 배급, 관람의 방식이 획일화된 한국 영화의 한 풍경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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