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5일∼5월 4일 열리는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은 정재은 임순례 여균동 등 한국 감독 6명이 만든 인권 영화 ‘여섯개의 시선’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 운동의 일환으로 추진한 이 프로젝트는 각 감독에게 5000만원의 지원금을 주고 성(性), 종교, 신분, 출신지,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상황, 인종, 전과 등 18개의 차별 조항 중 하나를 선택해 영화를 만들 것을 권했다. 저마다 개성이 뚜렷한 6인의 감독이 어떤 생각에서 각각의 소재를 선택했는지 들어봤다.》
#정재은-‘그 남자의 사정(事情)’
범죄자의 인권이 어디까지 존중되어야 하는가에 초점을 맞췄다. 그 중에서도 성범죄자를 주인공으로 선택한 이유는, 성범죄자의 인권은 보장받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 때문이다. ‘ㅁ’자 형태의 주상복합 아파트에는 성범죄를 저질러 신상이 공개된 A씨가 살고 있다. 모든 이웃이 그를 경멸하나 오줌싸개 어린이가 유일하게 그에게 관심을 보인다. 오줌싸개는 옷이 벗겨진 채 이웃에 가서 소금을 얻어오라는 엄마의 형벌을 받는다. 이는 “창피를 당해야 오줌을 싸지 않는다”는 이야기로 성범죄자의 신상 공개를 환유한 것이다. ‘ㅁ’자형 건물을 설정한 것은 가운데에서 모두를 통제할 수 있는 ‘ㅁ’자 감옥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임순례-‘그녀의 무게’
영화 ‘미소’의 프로듀서를 맡느라 뒤늦게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기 때문에 소재 선택의 폭이 좁았다.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다루고 싶었는데 박찬욱 감독이 먼저 차지하는 바람에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여고생을 소재로 택했다. 여자상고에 다니는 선경은 3학년이 되자 취업을 위해 몸매 관리를 하라는 선생님의 성화에 시달린다. 못생기고 뚱뚱한 선경은 쌍꺼풀 수술을 하고 단식원에 들어갈 돈을 벌기 위해 성매매의 유혹을 받는다. 요즘은 전봇대에 붙은 아르바이트 광고만 봐도 ‘용모 단정’이라는 문구를 발견할 수 있다. 나이가 어릴수록 외모지상주의의 위험을 인식하지 못하고 더 집착하게 된다. 주제는 무거우나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가능한 가볍게 했다. 관객에게 부담을 주기 싫었기 때문이다.
#여균동-‘대륙횡단’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감독 중 유일하게 신체적 장애에서 오는 인권 침해를 다뤘다. 지금은 나았지만 초등학교 때까지 소아마비로 다리를 절어야 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일거다. 두 다리를 못쓰는 선배 한 사람이 있었다. 20년 전인가, 그가 하루는 술을 마시고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세종로 네거리를 횡단했다. 처음 이 프로젝트를 제안받았을 때 그 장면이 떠올랐다. 한 뇌성마비 장애인의 일상적 사건을 13편의 에피소드로 구성했다. 마지막 에피소드 ‘대륙횡단’은 그 선배가 실제 한 일을 카메라에 담은 것이다. 나는 주류에는 관심이 없다. 언저리에 나앉은 사람들의 시선에 마음이 간다. 그리고 그 언저리에 앉아있는 사람은 모두 장애인이 아닌가 싶다.
#박찬욱-‘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
1992년 36세의 나이로 한국에 온 네팔 여인 찬드라의 실제 사건을 다뤘다. 그는 말이 잘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행려병자 취급을 받아 6년 4개월 동안 정신병원에 수감됐던 여인이다. 평소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에 분노해 왔다. 한국인들은 교포들이 해외 본토에서 받는 차별에 대해 분개하면서도 정작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를 무시한다. 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인가. 이 영화는 찬드라의 이야기를 다뤘지만 화면은 찬드라의 시선으로 바라본 한국 사람들을 비춘다. 이 영화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데 의미가 있다. 1000만원의 자비를 들여 네팔 현지촬영을 했지만 아깝다는 느낌이 조금도 없다.
#박진표-‘신비한 영어나라’
한국 부모들의 교육열은 상상, 아니 상식을 초월한다. 좋지 않은 영어발음이 구강구조 때문이라며 우리말도 아직 서투른 아이에게 혓바닥 하단의 설소대를 절단하는 수술을 시킨다. 이 영화는 설소대 수술에 얽힌 한 모자(母子)의 이야기를 다뤘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미래가 결정되는 아이들의 모습을 담고 싶었다. 아이들이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부모도 아이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게 아이러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간호사들은 모두 설소대 수술을 지켜본 적이 있는 실제 간호사다. 실제 설소대 수술 장면을 병원의 협조로 촬영해 영화 속에 삽입했다. 병원을 동화적인 공간으로 꾸며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끔찍한 수술과 대비시켰다.
#박광수-‘얼굴값’
다른 감독들의 주제가 워낙 무거워 가능한 가벼운 이야기를 하려 했다. 너무 교훈적으로 만들면 만드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 모두 고역이다. 차별은 어떤 형태로든 존재할 수 있다. 이 영화는 너무 흔해서 ‘문제’라고 여겨지지도 않는 하찮은 사건을 다뤘다. 서울의 한 장례식장을 찾은 남자가 여성 매표 요원과 실랑이가 붙는다. 예쁘게 생긴 이 여자와 다툼 끝에 남자는 결국 “얼굴값한다”는 말을 한다. 예쁘고 잘생겨서 차별받는 수도 있다. 주위에서는 내가 이 프로젝트의 가장 연장자라서 무거운 이야기를 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차별이 아닌 것을 다루고 싶었다.
2003 전주국제영화제 김은희 정수완 프로그래머가 뽑은 영화 10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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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경기자 sk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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