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살인의 추억' 형사 송강호 vs 살인진범 X 2003 가상 취조

  • 입력 2003년 4월 23일 16시 36분


영화 '살인의 추억'의 박두만 형사역을 맡은 송강호(왼쪽). 범인과의 가상 취조를 자료사진으로 그래픽 합성했다. 그래픽=강동영기자 kdy184@donga.com
영화 '살인의 추억'의 박두만 형사역을 맡은 송강호(왼쪽). 범인과의 가상 취조를 자료사진으로 그래픽 합성했다. 그래픽=강동영기자 kdy184@donga.com
《영화 ‘살인의 추억’의 마지막 장면은 경기도 작은 마을에서 6차례의 연쇄 강간살인사건이 발생한지 17년째 되는 2003년 어느 가을날을 비춘다.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된 경기 화성 연쇄살인사건은 10차례 일어났다. 형사를 그만두고 녹즙기 사업을 시작한 박두만(송강호)이 우연히 사건 현장에 들러 옛일을 기억하는 이 장면에는 범인을 못 잡은 것에 대한 자책과 슬픔이 담겨 있다. 꿈에서라도 잡고 싶었던 범인을 만난다면 박두만은 무슨 말을 할까. 송강호의 입을 빌려 박두만과 범인(Mr.X)의 대화를 가상으로 꾸몄다.》

▽박두만〓밥은 먹고 다니냐?(실제로 송강호가 범인을 만나면 맨 먼저 묻고싶은 질문이다.)

▽Mr.X〓밥은 먹고 다녔으니 지금 이렇게 만나는 것 아니겠소.

▽박〓그런 짓을 하고도 밥이 목구멍으로 들어가든?

▽Mr.X〓….

▽박〓왜 그랬냐.

▽Mr.X〓….

▽박〓말을 해. 임마!

▽Mr.X〓내가 한 번 물읍시다. 왜 그렇게 못 잡았수. 같은 방법으로 6차례의 범행을 했습니다. 첫 번째 범행은 막기 힘들었다 칩시다. 이후 기회가 5번이나 있었던 셈 아니오.

▽박〓형사고 전경이고 툭하면 시위 진압 나가야지, 대통령 온다고 시민들 우르르 데리고 마중 나가야지, 우리라고 너같이 미친 놈 잡고 싶지 않았겠냐. 영화 포스터 못봤어? ‘미치도록 잡고 싶었습니다’라고 써있는거.

▽Mr.X〓미치도록 잡고 싶으면 뭐합니까. 무당 찾아가 비싼 돈 주고 부적사고, 강간살인현장에 거시기 털이 없다고 ‘무모증(無毛症)’ 환자 찾으러 온 동네 목욕탕을 뒤지고 다니는 게 제대로된 수사요?

▽박〓오죽하면 그랬겠냐.

▽Mr.X〓서울에서 온 서태윤인가 뭔가 하는 형사 양반, 그 양반은 그래도 ‘대가리’ 굴리면서 제대로 합디다.

▽박〓서태윤은 정의를 위해서 널 잡고 싶어했어. 그러나 난 아니야. 난 직업이 형사이기 때문에 널 잡는거야. 영화 ‘도망자’ 봤냐? 거기서 검사로 나오는 토미 리 존스가 이런 말을 해. 용의자(해리슨 포드)가 “난 아내를 죽이지 않았다”고 하니까 “나랑 상관없다”(I Don't Care)고. 그런거야. 너, 너 범인? 나, 나 형사야 형사. 마찬가지야.

▽Mr.X〓영화는 재미있습디다. 그런데 불과 10년 전 사건이고, 피해자 가족의 아픔이 가시지 않았는데 영화로 만드는 건 너무 속보이는 짓 아니요.

▽박〓고양이가 쥐 생각하냐. 제작진 중 한 사람이 이런 말을 했지. “기억 자체가 응징의 시작”이라고. 여기에선 모든 사건들이 너무 쉽게 잊혀져. 2월 ‘대구지하철 참사’도 벌써 잊혀져 간다구. 하물며 10년 전 너같은 놈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이가 몇이나 되겠냐. 돈만 바라봤다면 이 영화를 단순히 사건 위주의 드라마로 몰고 갔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어. 너같은 살인마가 아무런 죄값도 치르지 않고 기억 속에 사라지도록 내버려둔 이 사회가 모두 공범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야.

▽Mr.X〓많은 사람들이 그 사건을 기억하려면 흥행이 잘 돼야겠군. 이 영화 흥행 안되면 괜히 피해자 가족들의 마음만 더 상할 것 아니요. 사람들은 여전히 무관심하다는 걸 다시 한 번 증명하는 셈이니.

▽박〓그러니까 (흥행이) 잘 돼야지 임마. 피해자의 영혼이 보고 가더라도 부끄럽지 않은 영화 만들자고 제작진끼리 다짐했어.

▽Mr.X〓그럼 계속 수고하쇼. 날 잡아 넣긴 쉽지 않을거요.

▽박〓너같은 놈은 내 ‘이단 옆차기’ 한방이면 끝나. 내가 서태윤을 강간범으로 오인해서 이단 옆차기 날리는 거 못봤어? 리허설 한 번 없이 찍은 장면이야 그게. 적어도 내게 이 사건의 공소시효는 영원해. 그렇게 살면 행복하냐? 너도 빨리 자수해서 광명 찾아.

김수경기자 sk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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