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완석=‘질투는 나의 힘’은 관객에게 불친절한 영화야. 뭔가를 꼭꼭 숨겨놓은 채 조금씩만 내놓고 주제가 모호해 한 번 봐서는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관객들이 천재가 아닌 바에야.
▽심영섭=그건 캐릭터 중심의 영화이기 때문에 그래. 지적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코미디 영화고. 등장인물 같은 사람을 만난 적이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공감도가 달라지는 영화예요, 이건. 주인공 원상(박해일)이 자기 애인을 빼앗은 편집장(문성근)에겐 복종적이면서 하숙집 딸에게는 막 대하고, 또 새로 좋아하게 된 성연(배종옥)과는 수평적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쓰잖아. 그런 미묘한 심리를 섬세하게 포착해낸 감독의 솜씨가 탁월하다고 생각해.
▽남=그게 뭐가 미묘해. 인간은 사회적 권력에 상응해 반응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뻔한 설정이지. 이 영화는 인간 욕망의 전시장 같아. 모든 인간 관계가 같이 먹고 술 마시고 섹스하고 그런 식으로 이뤄지잖아. 당신이 말한 원상의 태도 묘사 같은 부분은 사람의 행동을 유발하는 본능 중엔 권력적 측면도 존재한다는 걸 보여주는 거지. 그런데 그게 뭐 새로운 이야기인가?
▽심=아뇨. 나는 이 영화가 욕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관계의 그물망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서 받은 영향이 어떻게 또 다른 사람에게 전이되는가, 그런 과정을 보여주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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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사람에게 착취당한 이가 다른 사람에겐 폭력적이고, 뭐 그런 대물림을 말하는 거야?
▽심=그렇게 단순화할 수는 없고, 관계의 그물망에서는 우리가 모르는 사람에게서조차 영향을 받는다는 거지. 예컨대 편집장과 하숙집 딸은 서로 모르는 사이야. 하지만 하숙집 딸이 원상에게 버림받을 때는 편집장이 원상에게 한 조언이 절대적이잖아. 그처럼 우리를 얽어매는 관계의 복잡한 그물망에서는 전혀 모르는 이가 한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는 결정적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거야. 그런 인생의 부조리함을 다룬 영화라니까.
▽남=글쎄…. 제목이 시사하는 것처럼 원상을 움직이는 힘은 질투심이고 그런 질투심이나 성욕처럼 통제할 수 없는 욕망이 인간을 움직인다, 그래서 완전히 선하고 악한 사람은 있을 수 없다, 그런 이야기라고 나는 봤어. 형식도 현실의 단면을 툭툭 던지는 듯한 미니멀리즘이고. 그런 주제와 형식은 모더니즘 영화 계열에서 즐겨 다뤄왔던 거고 한국에서는 홍상수 감독의 전매특허나 마찬가지였어.
▽심=나는 박찬옥 감독의 시각이 홍상수 감독보다 훨씬 따뜻하다고 생각하는 걸? 인간에 대한 시각이 긍정적이야. 특히 여성들에 대해.
▽남=뒤로 갈수록 남성의 욕망에 포커스를 맞추는데도 여성에 대해 긍정적이란 말야? 나는 이 영화를 여성의 입장에서 만든 여성감독의 영화라고 평가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
▽심=아니지. 성연같은 캐릭터를 보라고. 성연은 근래 한국영화에서 보기 드물게 매력적인 여자야. 여성성이나 애정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삶을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여자, 우리 주변에 많이 있는데 영화 주인공이 한 번도 안됐던 그런 여자야. 또 자기랑 잤던 편집장의 아내를 보는 성연의 얼굴 클로즈업 같은 건 남성 감독은 절대로 짚어낼 수 없는 장면이야. 정말 처절하고 힘이 들거나 감정이 여울목치는 인생의 어떤 한 순간을 포착해내고 있잖아. 나는 박찬옥 감독을 ‘여자 홍상수’라 부르는 데 동의할 수 없어.
▽남=성연이야 그렇다치고, 하숙집 딸같은 경우는 어떻고? 관계에 모든 것을 걸다가 결국 버림받는, 한 많은 여자의 전형적 모습이잖아. 그건 마이너스야. 그건 그렇고, 생뚱맞은 대사들을 놓치면 이 영화를 따라가기가 힘이 드는데 영화적 관점에서 보면 발달이라기보다 퇴보 아냐? 영화라면 시각적으로 무엇인가를 표현해서 전달해 줘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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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언성을 높이며) 누가 그래, 누가. 말이 안돼.
▽남=영화의 본질은 움직임과 이미지야.
▽심=아냐. 모든 예술의 본질은 감독이 생각하는 인생에 대한 이야기야.
▽남=이 영화에서는 언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크다니까.
▽심=뭐 그렇게는 말할 수 있겠지만…. 좌우간 나는 이 영화가 브람스의 음악처럼 곱씹을수록 맛이 배어나오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편집장이 캡틴 큐를 놓고 “싸구려 양주, 자꾸 마시게 돼. 근데 괜찮아”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잖아. 그처럼 자꾸 기대를 배신해도 계속 마시게 되고, 그러면 괜찮아지고, 그런 인생에 대한 은유 같은 영화야.
정리=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토론 관전기▼
‘질투는 나의 힘’을 놓고 벌인 부부의 설전은 ‘질투는 나의 힘’ 속편이라 할 만큼 서로 속을 떠보는 대화로 이어졌다.
▽심=편집장말야. 여자한테는 로맨틱한 바람둥이면서 직장에서는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이잖아. 소위 성공했다는 남자들 중에 그런 사람이 많아.
▽남=(심드렁하게) 그래?
▽심=편집장이 유학을 다녀온 걸 은근히 뻐기잖아. 지적인 힘을 자본으로 하는 사회에서 유학을 다녀온 것이 꽤 굉장한 권력인 가봐.
▽남=(계속 심드렁하게) 그래서 사람들이 5∼10년씩 투자하면서 유학을 가는 거겠지.
▽심=당신도 유학을 갔다 왔잖아. 게다가 교수고. (도끼눈을 뜨며) 마음만 먹으면 여자 꼬이기 쉽겠네?
▽남=(피식 웃으며) 내 문제는 편집장처럼 뻔뻔하질 못하다는 거지.
▽심=(반가운 듯) 그렇지! 그게 포인트야. 당신이 뻔뻔하다면 성공할지는 몰라도, 나는 성공한 남자보다 내 옆에 있어 주는 남자가 필요해. (다짐하듯) 당신도 그거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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