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의 애니메이션이 국내 스크린에서 맞붙는다. 25일 개봉하는 일본 애니메이션 ‘모노노케 히메’(원제 ‘もののけ姬’)와 다음달 1일 개봉하는 한국 애니메이션 ‘오세암’이 그것. ‘모노노케 히메’가 240억원의 제작비를 들인 ‘블록버스터’인데 비해 ‘오세암’은 15억원 밖에 들지 않은 ‘저예산 애니메이션’이다. 두 작품의 대결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보이지만 ‘오세암’은 한국적 정서가 짙게 배인 영상과 소재를 통해 국내 관객에게 다가서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 수채화 VS 화려함
‘오세암’은 1986년 고 정채봉씨가 설악산 오세암 설화를 소재로 쓴 동명의 동화가 원작이다. 엄마를 찾아나선 다섯 살 꼬마 길손이 수행 끝에 부처가 된 이야기다.
제작진이 이 작품에서 가장 신경을 쓴 대목은 한국적 정서와 색감을 담아내는 것이었다. 애니메이션 후발 주자인 한국이 저패니메이션과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의 현란한 영상과 동등하게 겨루는 것은 역부족. 이 작품은 산사의 고즈넉한 자연 풍경을 수채화처럼 표현했다. 강렬한 색보다 파스텔톤으로 배경을 처리해 정적(靜的)인 느낌을 고조시켰다.
성백엽 감독은 설악산의 전경과 사찰, 단청의 색을 일일이 사진으로 찍어 그림에 반영했다. 한국적 ‘선’의 미학을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서다. 관음사 단청은 실사로 보일 만큼 사실적으로 묘사됐다. 배경 한 장을 그리는데 평균 보름의 시간이 걸렸다.
‘모노노케 히메’의 영상은 화려하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그의 작품 중 처음으로 컴퓨터 그래픽과 디지털 기술을 사용해 역동감 넘치는 화면을 연출했다. 주인공 아시타카가 늑대를 타고 질주하는 장면에서는 박진감 넘치는 속도감과 삼차원적 공간감이 살아 있다. 이 작품을 위해 그려진 그림은 14만4000장이다. 1997년 일본에서 개봉됐을 때 142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고 2000억원이라는 흥행수입을 올렸다.
# 그리움 VS 상상력
‘오세암’은 ‘어머니의 그리움’을 다뤘다. 이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소재로 가족간 유대가 끈끈한 동양 정서에 큰 호소력을 지닌다. 제작진이 이 영화를 ‘한국형 가족 애니메이션’으로 명명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아직도 ‘어머니란 모든 것을 희생하는 존재’로 인식하는 한국의 판타지에 천착한다는 지적도 있다. 1960, 70년대 가난했던 시절 어머니의 희생은 불가피했으나 21세기에 이같은 어머니상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미지수다.
‘모노노케 히메’는 중세 일본을 배경으로 한 일종의 시대극이다. 자연을 훼손한 인간과 이에 분노한 자연과의 대결 구도다. 영화에는 일본 무로마치 시대의 생활상이 녹아 있다. 일본의 전통 의상들과 제철소, ‘화승총’ 등 당시 모습이 그대로 나온다.
자연물마다 정령이 깃들어있다고 믿는 일본의 다신교 신앙도 주제에 스며들어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삼라만상이 생명을 가지고 있고 서로 소통한다는 애니미즘적 상상력이 이 작품을 관통한다.
일본의 문화평론가 키리도시 리사쿠는 ‘모노노케 히메’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일본의 이야기를 그리겠다’는 감독의 의지를 구체화한 시기라고 정의했다.
# 따뜻함 VS 진지함
‘오세암’은 다섯 살 어린이의 시선으로 그려지므로 전개가 가볍다. 길손이 어려서 부모를 잃고 누나는 눈이 멀었다는 설정이 신파적이나 불당에서 뛰어다니고 스님들의 신발을 나무에 거는 등 길손의 장난끼 어린 모습이 이를 상쇄하고도 남는다. 스토리가 단순해서 성인관객들에겐 다소 밋밋할 수도 있지만 가난했던 시절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한다.
‘모노노케 히메’는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라는 철학적 문제를 던진다. 삶을 유지하기 위해 자연을 훼손하는인간의 부조리를 다루고 싶었다는 게 감독의 설명이다. 어린이가 보기엔 버거울 수도 있다.
‘모노노케 히메’는 폭력적인 장면들이 다수 나온다. 전쟁 장면에서 무사들의 목이 순식간에 잘려나가고 팔과 다리가 떨어져 나간다. 재앙신이 마을을 습격하고 동물들이 떼죽음을 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에서 이 폭력은 자연의 힘에 대한 경외를 안겨준다. 두 영화 모두 전체 관람가.
김수경기자 sk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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