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구가 연기 잘한다는 거야 일찍부터 알고 있었지만 ‘공공의 적’ 때 같이 일하면서 ‘역시’라고 감탄했지요. 무슨 역을 맡겨도 알아서 준비해 오니까 별로 간섭할게 없었어요. 다음 작품은 무조건 나랑 같이 하자고 했죠. 나랑 한 편만 더하면 정말 훌륭한 배우가 될 것 같다고….
△설=다음 작품이 ‘실미도’인 줄 알았으면 다시 생각해 보는 건데….(웃음) 시나리오 받고 덜컥 겁이 났어요. 훈련병들이 훈련받는 과정이 장난이 아니거든요. 감독님, 나 훈련병말고 교관 시켜주시면 안돼요?(웃음)
△강=‘쌈마이’ 감독이 무게있는 영화 찍는다니까 주위에서 어떤 식으로 만들거냐고 묻는 사람이 많아요.(웃음) 사실 이 영화는 비극적 사건을 다뤘지만 영화적 재미를 추구할 수 있는 소재예요. 이 영화가 단지 잔인한 훈련과정을 실감나게 그리는데 초점을 맞춘다면 실패할지도 몰라요. 그래서 왜 이런 부대가 생겨날 수 밖에 없었으며, 왜 교관들은 그들을 혹독하게 훈련해야 했는지 시대적 상황을 충분히 설득력 있게 그려내려고 합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훈련병이나 교관이나 모두 시대가 낳은 피해자잖아요.
△설=제가 맡은 인찬은 월북한 아버지 때문에 연좌제에 묶여 사회에 온전하게 적응할 수 없는 인물이에요. 아버지의 과거가 사사건건 발목을 잡아 결국 조직폭력배의 길에 들어설 수 밖에 없었죠. 실미도 부대원 중 유일하게 이념을 갖고 입소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중심이 됩니다. 이데올로기의 폭력은 어쩌면 물리적 폭력보다 더 무서운 지 몰라요. 인찬이 ‘김일성 목 따는 것’을 평생의 소원으로 생각했을 만큼.
△강=돈도 벌만큼 벌었는데 왜 사서 고생이냐는 얘기도 들었죠. 하지만 강우석이 감독으로서 아직은 한국영화계에 쓸모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마지막 승부수’라고 해야 하나. 제작비 90억원이 어디에 쓰이냐고 묻는 이들도 많은데, 실미도 야외 세트만해도 15억원이에요.
△설=실미도를 촬영지로 정하고 처음 현장 답사를 왔던 날, 강감독이 그렇게 긴장하는 건 처음봤어요. 감독님은 사실 코미디언 해도 될 만큼 재미있고 유쾌한 분이거든요. 그런데 저 머리 뒷 쪽에 원형탈모증 생긴 거 보세요.
△강=코믹한 장면 없이 어떻게 재미를 전달할 것인지를 시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겁니다. 영화 ‘더 록’을 보면 코믹한 장면이 거의 없지만 관객이 처음부터 끝까지 몰입해서 보거든요. 이데올로기 문제가 너무 ‘낡은 소재’가 아니냐는 시각도 있어요. 하지만 TV 드라마 ‘야인시대’만 보더라도 김두한 얘기는 이미 알려질만큼 알려졌지만 여전히 인기가 있거든요. 마찬가지죠.
△설=그렇지만 이번 영화는 실제 사건을 다뤘기 때문에 조심스러워요. 사건이 일어났을 때 제가 세 살이었으니까 전혀 기억을 못해요. 그러나 40∼50대 관객들은 모두 기억하고 있는데다 유가족도 있고 당시 훈련 교관들이 몇분 살아계세요. 당시 소대장이었던 분이 피해자 추모제에 참석해 눈물을 흘리시더라고요. 소름이 쫙 끼쳤어요. 피해자에게 누가 되지 않아야 하는데….
김수경기자 skkim@donga.com
▼실미도 사건은▼
1968년 1월 북한 특수부대원 31명이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남한에 침투해 국민들을 경악시켰다. 이에 대응해 남한은 1968년 4월 ‘북파공작원 부대’를 만들었다. 이들 대원들은 인천 앞바다의 무인도인 실미도에서 지옥훈련을 통해 인간 병기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70년대 초 남북한 화해무드가 조성되면서 ‘실미도 부대’의 존재 가치가 사라졌다. 앞날에 불안을 느낀 부대원 24명은 71년 8월 23일 수류탄과 카빈총으로 무장한 채 버스를 탈취해 청와대로 향하다가 군경과 교전 끝에 14명은 자폭하고 4명은 사살됐다. 나머지 6명은 검거됐으나 군사 재판을 거쳐 총살됐다. 이 사건은 오랫동안 한국 현대사의 오점이 된 채 실체적 진실이 드러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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