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의 단편 ‘길-존재는 눈물을 흘린다’를 원작으로 삼은 이 드라마는 한 부부의 자동차 여행을 좇는 로드무비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지난해 11월부터 6개월간 촬영하면서 각 계절의 정취를 담았다. 당초 3월 방송키로 기획됐으나, 제작 도중 ‘흡연 장면 추방’ 조치가 나오는 바람에 고뇌에 찬 남편의 흡연 장면이 담긴 컷들을 재 촬영하느라 방영이 미뤄졌다. 낙엽이 나오는 장면은 서울 경동시장에서 약재로 파는 은행잎을 사다가 노란색 스프레이를 뿌린 뒤 다시 찍었다는 후문.
방송국 촬영감독인 경재(전무송)는 명퇴 압력을 받고 있다. 수학교사인 아내 순애(김윤경)와의 사이에 있던 외아들은 80년대 학생 민주화 운동과정에서 숨을 거뒀다. 아들이 사경을 헤맬 당시 일중독이었던 경재는 촬영에만 매달려 있었고 순애만이 홀로 아들의 주검을 지켰다. 어느 날 아내는 느닷없는 여행을 제의한다. 한계령에서 보내는 밤, 아내는 “이제는 편안해 지고 싶다”며 이혼을 요구한다. 다음날 부부는 동해로 향하고, 경재는 끝내 명퇴 얘기를 꺼내지 못한다. 이튿날 아침 아내는 떠나고 없다. 경재는 아내가 떠난 간이역을 걸어 나와 사직서를 방송사에 부친다.
남편만이 홀로 남겨진 간이역에 샛노란 은행잎이 부각되는 마지막 장면은 HDTV화면으로 보면 더 큰 감흥을 준다. 가로 세로의 비율이 16대 9인 화면을 통해서만 전달 가능한 미학적 시도들도 눈에 띈다. 화면 한 구석에 있는 듯 없는 듯 등장하는 노부부와 신혼부부의 정다운 모습은 주인공 부부의 갈등을 더욱 부각시키는 장치인 셈.
장기오 PD는 “뒤에서 트럭이 경적을 울려대며 따라붙자 차를 탄 부부가 길을 내주는 장면은 새로운 세대에게 추월당하는 중년의 안타까움을 상징한 것”이라며 “알 듯 모를 듯한 시각적 상징들을 간파해 보는 것도 이 드라마를 보는 즐거움”이라고 말했다.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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