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목 '아하! 그렇구나']“우연히 겹친 제목 그냥 갈수 없죠

  • 입력 2003년 5월 8일 17시 57분


임창정 김선아 주연의 영화 ‘위대한 유산’이 4월 말 크랭크인 했다. 캐스팅만 봐도 코믹한 분위기를 암시하는 이 영화는 두 남녀 백수가 뺑소니 사고를 함께 목격하고 사례금을 타내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룬 코미디다. 그런데 ‘위대한 유산’이라는 제목에선 그다지 유머러스한 이미지가 느껴지지 않는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을 영화화한 귀네스 팰트로, 에단 호크 주연의 동명영화 ‘위대한 유산’이 떠올라서 그럴까.

‘위대한 유산’을 제작하는 CJ엔터테인먼트는 당초 제목을 ‘백조와 백수’로 결정했다. ‘백조’는 여자 백수를 일컫는 은어로 ‘백조와 백수’는 백수 커플을 뜻한다. 그러나 공교로운 일이 벌어졌다. CJ측의 영화가 기획되기 전에 동명의 소설이 인터넷에 연재됐고 청년필름에서 지난해 가을 이를 영화화하기로 원작자와 계약까지 마친 상태였던 것.

‘백조와 백수’라는 제목은 상표권 등록이 안돼 있었기에 먼저 촬영에 들어간 CJ측이 똑같은 제목을 쓴다고 청년필름이 막을 길은 없다. 그럼에도 CJ측이 “동명의 원작이 있는 영화이라서 우리쪽이 제목을 바꾸기는 곤란하다”는 청년필름측 의견을 받아들여 원만히 해결됐다.

비슷한 예는 또 있다. 6월 5일 개봉하는 ‘역전에 산다’는 원래 ‘역전의 명수’로 제목을 확정짓고 촬영에 들어갔다.

마침 같은 제목의 영화를 준비 중이던 신인 박흥식 감독이 자신이 오랫동안 준비해온 동명의 시나리오에 강한 애착을 보이며 제목을 양보해달라고 요구했다.

‘역전에 산다’의 제작사인 웰메이드 필름과 에이원 시네마는 이미 ‘역전의 명수’라는 제목으로 상당한 마케팅 비용을 지출하는 등 물러설 수 없는 처지였기에 소송까지 생각하며 버티다 결국 제목을 바꿨다.

영화 제목은 저작권 문제가 걸리지 않으면 먼저 ‘찜’해서 영화화하는 사람이 임자다. 그래서 종종 제목으로 인해 갈등이 생기기도 하지만 법적 공방까지 가는 경우는 드물다. 좁디좁은 한국 영화계의 특성상, 서로 얼굴 붉히는 일 없이 원만하게 합의하는 것이 관례이기 때문이다.

김수경기자 sk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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