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비하면 ‘살인의 추억’에서 여자들은 주로 ‘사체’ 역할을 맡았다. 남자배우들이 연기를 하고 여배우들이 ‘소품’에 머무는 현상은 ‘살인의 추억’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 멜로 영화가 사라지고 액션과 코미디 영화가 트렌드를 이룬 까닭이지만 남자배우들의 리스트로만 보면 한국영화는 전성기를 맞은 느낌이다.
◇ “반짝 인기보다 연기로 승부” 남다른 각오
TV 드라마 ‘애드버킷’으로 데뷔한 김상경은 2001년 영화 ‘생활의 발견’에서 연기자로 빛을 발한다. ‘살인의 추억’을 위해 무려 12kg을 감량한 지독함과 다음 작품을 ‘그저’ 기다리는 여유도 갖고 있다. 김상경에 비하면 박해일은 일찌감치 충무로를 밝힐 배우로 꼽혀왔다. 그는 수능시험 소집일 당한 교통사고로 군대를 면제받고 밴드, 웨이터, 비디오방 종업원 등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연극 ‘청춘예찬’으로 매스컴의 주목을 받은 뒤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 ‘후아유’ ‘질투는 나의 힘’으로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 동시에 모든 것을 말하는 눈빛 때문에 봉준호 감독이 애초부터 용의자 역에 점찍어놓았다고 한다.
‘꽃미남’은 아니지만 영화에 대한 진정성과 비주류 영화와 상업영화를 아우르는 작품 선택 기준-내가 좋으면-에서 흔히 송강호를 잇는 배우로 꼽히는 배우가 신하균과 양동근, 류승범이다.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착한’ 북한병사로 나와 스타덤에 오른 신하균(29)은 ‘복수는 나의 것’에서 불운의 화신인 청각장애인 류로 나와 연기력을 인정받았고 이후 출연한 ‘지구를 지켜라’ ‘화성으로 간 사나이’에선 ‘그 아니면 안 되는 역’이란 찬사도 받았다.
개봉을 앞두고 있는 ‘와일드 카드’에서 형사 역을 맡은 양동근(24)과 ‘아라한-장풍대작전’을 촬영중인 류승범(23)은 TV에서도 주체할 수 없는 끼를 보여준 낯익은 얼굴들. ‘수취인 불명’ ‘해적, 디스코왕 되다’(이상 양동근),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다찌마와 리’ ‘품행제로’(이상 류승범) 등 심상찮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두 사람은 대중적인 TV드라마와 비주류 영화를 조화시키며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앞서 두 사람에 비하면 너무 잘생긴 외모의 권상우(27)와 조승우(23)가 있다. 올해 ‘동갑내기 과외하기’란 히트작을 터뜨린 권상우는 데뷔작 ‘화산고’부터 TV드라마 ‘지금은 연애중’에 이르기까지 데뷔 후 3년 동안 매우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었다는 장점이 있다.
2000년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 오디션을 통해 이몽룡으로 데뷔한 조승우가 송강호의 대를 잇는 배우로 제작자들과 기자들의 추천을 받은 것은 다소 뜻밖이었다. 영화사 봄의 전준희 실장은 “갓 스물인 배우가 이몽룡을 그렇게 소화하긴 쉽지 않다. 그때 이미 조승우는 충무로의 주목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조승우는 ‘와니와 준하’ ‘클래식’ ‘후아유’ ‘H’ 등 메이저 영화사 영화의 주인공을 돌아가며 맡았다. 흥행 성적은 썩 좋지 않았지만 언젠가 한국영화에서 제 몫을 하리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평이다.
남자배우 전성시대를 이끄는 이들 열혈 연기파들에 대해 CJ엔터테인먼트 마케팅팀의 이상윤씨는 “TV 스타의 이미지가 스크린에서는 오히려 마이너스인데, 다행히 이들은 10대 팬들로부터 반짝 인기를 얻기보다 평생 연기자로서 성공하길 원한다”고 말한다. 이들에게 성공이란 경제적인 것을 넘어서 한국영화의 시스템을 바꿀 수 있는 정당한 문화적, 사회적 영향력을 의미한다. 물론 이들의 모델은 안성기, 문성근, 한석규 그리고 송강호 같은 선배들이다.
김민경 주간동아 기자 holden@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