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 ‘매트릭스-리로디드’의 미국 개봉일인 15일이 낀 14∼16일, 세계 최대 규모의 게임박람회 E3(Electronic Entertainment Expo)가 열린 미국 로스앤젤레스 컨벤션센터에는 입장료 300달러(약 36만원)를 내고 워쇼스키 형제의 속셈을 들여다보려는 관람객들로 붐볐다.
▽매트릭스 신드롬=인포그램의 새 브랜드인 ‘아타리’는 2년 전 영화 매트릭스 속편 제작 시작과 동시에 키아누 리브스, 캐리 앤 모스 등 배우들의 얼굴을 3차원 컴퓨터 그래픽으로 똑같이 그리기 시작했다. 총 쏘기, 격투, 비행, 자동차 경주 등 영화에 등장하는 액션을 소재로 게임을 제작했다.
22세기. 유리용기 속에 갇힌 인간에게서 뽑아낸 생체전기 에너지로 컴퓨터(매트릭스)는 세상을 지배하고, 컴퓨터에 의해 뇌를 조작당한 인간은 컴퓨터가 프로그래밍한 가상현실 속에서 존재의 무의미함을 망각한 채 생로병사의 삶을 산다. 매트릭스를 탈출한 소수의 인간이 인류를 컴퓨터로부터 해방시킨다는 줄거리 속에 워쇼스키 형제는 엄청난 분량의 유심론(唯心論)과 존재론을 범벅했으며 주인공 네오를 구세주로 해석할 수 있는 종교적 색채도 가미했다.
워쇼스키 형제는 극장영화를 부연 설명하는 1시간 분량의 별도 영화를 게임 ‘엔터 더 매트릭스’ 안에 삽입했고, E3에서 매트릭스 속편과 게임 ‘엔터 더 매트릭스’는 ‘영화와 게임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매트릭스 패러독스=‘컴퓨터가 조작한 가상현실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킨다’는 주제의 매트릭스는 E3에서 역설적으로 가상현실에 몰입하려는 인간들을 몰고 다녔다. 유비소프트사는 게임 리니지와 같은 다중접속롤플레잉게임(MMORPG·Massive Multiplayer Online Roll Playing Game) ‘매트릭스 온라인’을 선보였다. 내년에 서비스될 예정인 이 게임은 게임 속에서 사용자의 실력에 따라 게임 속 세상 자체가 변화한다는 영화 매트릭스와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다.
▽매트릭스의 시작=컴퓨터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은 그동안 키보드나 마우스 컨트롤러 등의 ‘입력장치’(인터페이스)를 통해 게임 속으로 들어갔다. 게임 개발자들은 손가락 동작만으로도 충분히 현실감을 느낄 수 있도록, 손동작과 게임 속 캐릭터 움직임의 연관 관계를 높이기 위해 버튼을 누르는 시간과 횟수 등을 조절했다.
E3에서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SCEI)가 내놓은 ‘아이토이’는 비디오게임기(콘솔) 플레이스테이션2(PS2)에 연결된 상태에서 게이머를 촬영해 게임 속에 등장시킨다. 사람 자체가 인터페이스이며, 화면에 뜬 자신의 모습 주위로 날아드는 적들을 손과 발로 때려잡기도 하고 물건을 집어 들기도 하면서 관람객들은 ‘내가 게임 속에 있는 것인가, 게임 속의 내가 여기 있는 것인가’ 잠시 혼돈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매트릭스 열풍 속의 E3와 E3 속의 매트릭스 열풍, 그리고 게임 속 나를 보는 나와 나를 보는 게임 속 나. E3에서 게임은 더 이상 생활 속에 있지 않았다. 게임 속에 생활이 있었다.
로스앤젤레스=나성엽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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