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산하게 웃으며 영화를 열고 닫는 저격수의 대사처럼, ‘폰 부스 (Phone Booth)’는 프라이버시가 상실되고 어디선가 누가 나를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현대 사회의 공포를 소재로 한 스릴러 영화다.
익명의 저격수의 협박을 소재로 삼은 이 영화는 지난해 10월 미국 워싱턴에서 무차별 연쇄저격사건이 터진 뒤 개봉이 연기됐다가 이제야 빛을 보게 됐다. 81분의 상영시간 내내 공중전화 부스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팽팽한 긴장감이 잘 살아있다.
뉴욕의 잘 나가는 미디어 에이전트 스튜 (콜린 파렐)는 언론사에 슬쩍 정보를 흘리고 절대 기사를 내면 안된다고 요란을 떨어 기사가 나가게 만드는 수완이 있다.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을 일삼는 그가 공중전화를 사용하는 때는 휴대전화 사용 내역을 아내에게 들키지 않고 아내 몰래 사귀는 애인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서다. 어느 날 공중전화 부스에서 애인에게 전화를 건 뒤 돌아서는 그의 뒤에서 전화벨이 울린다. 무심코 수화기를 든 스튜는 “전화를 끊으면 쏴버리겠다”는 저격수 (키퍼 서덜랜드)의 협박을 받는다. 전화 부스 밖에서 빨리 나오라고 스튜에게 시비를 걸던 남자가 저격수의 총에 죽자 스튜의 공포는 극에 달하고, 출동한 경찰은 스튜를 살인자로 여긴다.
저격수는 가혹한 신처럼, 목숨을 담보로 죄의 고백을 요구한다. 아내를 속인 죄를 만인 앞에서 고백하지 않으면 현장에 달려 나온 아내를 죽이겠다, 부스 위에 저격수가 미리 숨겨둔 총을 집지 않으면 아내를 죽이겠다는 식이다. 저격수의 요구대로 스튜가 죄를 고백하면 그가 쌓아온 성취는 일거에 무너질 것이고, 스튜가 총을 집으면 경찰들이 그를 쏠 것이다. 이 영화에서 도덕성의 문제는 진퇴양난의 상황을 만들기 위한 덫일 뿐이다. 관객의 관심은 스튜의 죄질과 도덕성 대신, 저 상황에서 스튜가 어떤 식으로 머리를 쓰고 어떻게 행동할까에 온통 쏠리게 된다.
이 영화의 성패는 공중전화 부스에서 내내 수화기를 붙들고 서 있어야 하는 콜린 파렐의 연기에 달려 있다. 아일랜드 출신으로 요즘 할리우드에서 가장 각광받는 배우 가운데 하나인 콜린 파렐의 연기에는 긴장과 집중력이 살아있고, 저격수의 목소리에도 위압감이 있고 음산한 기운이 넘친다. ‘타임 투 킬’ ‘배트맨과 로빈’등을 만들었던 조엘 슈마허 감독은 이 영화를 한 세트에서 10일 만에 촬영했다고 한다. 12세이상 관람가. 13일 개봉.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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