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닝 글로리’(1933), ‘초대받지 않은 손님’(1967), ‘겨울의 사자’(1968), ‘황금연못’(1981)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4차례 탔으며 후보에만 12차례 지명되는 대기록을 세운 그는 87세의 고령에도 연극무대에 설 정도로 활기찬 삶을 살아왔다. 그러나 파킨슨병을 오래 앓은 데다 최근 고관절 수술을 받는 등 건강이 악화되어 왔다.
헵번의 사망 소식을 들은 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성명을 내고 “세상의 모든 여배우들은 그녀를 보며 ‘내가 그녀 같을 수만 있다면’하고 생각해 왔다”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도 애도 성명에서 “캐서린은 국가의 예술적 보물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미국 극장 제작자 연맹은 1일 저녁(현지시간)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그의 타계를 애도하는 소등 행사를 갖는다. 헵번의 유언에 따라 추도식은 열리지 않으며 장례도 가족들만 참석한 가운데 치러질 예정이다.
1907년 외과의사인 아버지와 여성참정권 운동가였던 어머니의 여섯 자녀 중 둘째딸로 태어난 헵번은 1928년 뉴욕 연극무대에서 연기를 시작한 뒤 1932년 ‘이혼 약정서’로 영화에 데뷔했다. 그 뒤 모두 5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며 마지막 출연작은 1994년의 ‘러브 어페어’였다.
대표작 ‘필라델피아 이야기’(1940)를 비롯한 자신의 출연작을 통해 헵번은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치며 거침없이 의견을 피력하는 새로운 여성상을 만들어냈고, 바지 차림의 활동적인 패션 스타일을 창조해냈다. 그는 출연작들의 흥행이 부진하자 연극 ‘필라델피아 이야기’의 영화판권을 산 뒤 감독 작가 출연진에 대한 승인권을 갖는다는 조건으로 영화사인 MGM측과 협상해 영화를 제작, 주연하는 ‘비즈니스 우먼’으로서의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4개 중 3개를 60세 이후 탔다는 사실도 할리우드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다.
헵번은 21세 때 필라델피아의 사교계 명사와 결혼했다가 6년 뒤 이혼했으며 그 후 다시 결혼하지 않았다. 백만장자 하워드 휴스와도 한때 염문을 뿌렸으나 헵번의 평생 연인은 배우 스펜서 트레이시였다.
헵번과 트레이시는 ‘올해의 여성’(1942)을 비롯한 9편의 영화를 함께 찍으며 ‘완벽한 미국인 커플’을 그려냈다는 찬사를 들었다. 유부남이었던 트레이시는 세상을 뜰 때까지 아내와 이혼하지 않았으나 헵번과 25년간 공공연한 연인 관계를 유지했다.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함께 출연한 영화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1967). 영화를 완성하고 나서 얼마 뒤 트레이시는 세상을 떠났고 이 작품으로 헵번은 두 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탔다. 그는 1987년 베스트셀러 ‘아프리카의 여왕 촬영기’를 썼으며, 1992년에는 회고록 ‘나’를 발표했다.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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