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애니메이션 사상 최고 제작비인 126억원(마케팅 비용 포함)을 들인 데다 영화가 완성되기까지 걸린 시간도 무려 7년. 김문생 감독(42)은 “그 사이 외환위기도 겪었고 처음 시작할 때 초등학교 1년이던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갔다”고 했다.
유난히 긴 제작 기간은 ‘원더풀 데이즈’가 2D와 3D 애니메이션, 미니어처 실사 촬영 등 3가지 방식을 합성한 ‘멀티메이션 (Multi-mation)’이기 때문.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전통적인 2D 셀 애니메이션, 전투기와 오토바이 같은 탈 것들과 배경 일부는 입체적인 3D 컴퓨터 애니메이션으로 그려졌으며 배경과 건물은 미니어처를 제작해 촬영한 것이다.
1988년부터 ‘하벤’ ‘환타’ ‘치토스’ 등 애니메이션을 활용한 숱한 광고를 히트시킨 CF감독 출신인 김 감독은 전례 없는 ‘멀티메이션’기법에 대해 “나만의 독특한 영상을 만들어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화면에서 안개가 흐르는 장면을 얻기 위해 미니어처 세트장에 스모그를 뿜어놓고 찍었다. 그 위에 애니메이션으로 그린 인물들을 덧입히는 작업이 고되긴 했지만, 그 덕분에 애니메이션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중량감과 깊이를 담아냈다고 생각한다.”
3가지 방식의 이미지를 한장면에 합성하는 데 걸린 시간은 평균 1주일, 완성본의 전체 용량은 2만 기가바이트다. 하드 드라이버 용량이 100 기가바이트인 컴퓨터 200대 분량이다.
시사회 자리에서 ‘원더풀 데이즈’의 시각적 이미지는 비주얼에 공들인 덕택에 한국 애니메이션의 정점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깊이가 있고 세련됐다는 평을 들었다.
그러나 ‘원더풀 데이즈’는 기술적 성과와 동시에 한국 애니메이션의 한계를 드러내는 작품이기도 하다. 에너지 전쟁이 지구를 휩쓴 이후의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의 스토리는 단순하고 상투적이다. 비주얼은 정교하나 시나리오가 빈약하다는 것이 공통된 평가.
이에 대해 김 감독은 “스토리를 미주알고주알 설명하는 할리우드식 영화는 싫다. 그럴 바엔 책을 읽지 왜 영화를 보느냐. 이미지만으로도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시나리오를 자주 고치는 게 애니메이션 제작에는 치명적 약점인 것을 알면서도 100번 가까이 고쳤다”며 “애니메이션 전문 작가의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말했다.
‘원더풀 데이즈’는 빼어난 비주얼로 해외 필름마켓에서 호평을 얻기 시작했으며 김 감독에게도 주문 제작 의뢰나 감독 제안이 들어오고 있다.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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