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서울 종로구 원서동 궁중음식연구원(원장 한복려)이 있는 한옥의 본채인 ‘지미재(知味齋)’. 하늘색 앞치마를 두른 배우 이영애(32)는 진지한 눈망울을 또렷이 빛내며 궁중음식 전수자인 한 원장의 설명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영애는 9월 첫방영되는 MBC 50부작 대하사극 ‘대장금’ 촬영을 앞두고 지난달 25일부터 4일까지 하루 6시간씩 궁중음식연구원에서 한국전통음식 조리법을 전수받았다.
‘대장금’은 ‘허준’ ‘상도’를 연출했던 이병훈 PD의 대하사극. 조선 중종 때 수라관(궁중 요리사)을 통해 입궐한 뒤 관비로 전락했다가 나중에 어의(御醫)의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인 여성의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다.
이영애는 2000년 SBS드라마 ‘불꽃’ 이후 3년 만의 TV 출연인 데다 영화 ‘봄날은 간다’ 이후 2년 만에 대중 앞에 선보이는 작품이라 더욱 세심한 준비를 하고 있다.
“대장금은 조선왕조실록에 나온 실존 인물입니다. 궁중 암투나 질투, 권력 다툼이 아니라 한 여인의 성공스토리라 시청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사극으로서는 처음 다뤄지는 인물이어서 해석의 여지가 많습니다.”
이영애는 궁중음식연구원에서 다른 실습생들과 마찬가지로 앞치마를 두르고 한 원장으로부터 도마와 칼을 사용하는 법부터 채썰기, 나물손질, 삶기, 짜기, 무치기 등 한식요리의 기본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임금님이 이른 아침에 드시는 죽상부터 12가지 반찬이 올라가는 수라상, 신선로 구절판 등 궁중잔치상을 차리는 법과 궁중음식 도구 사용예절, 손놀림을 하나하나 배워나갔다.
처음엔 ‘연기자가 형식적으로 배우려니’하고 무심코 생각했던 한 원장은 “이영애의 진지한 태도에 나도 반했다”고 말했다. 궁중음식연구원의 실습생들도 “원장님이 저렇게 열과 성의를 다하시는 것은 처음 봤다. 30년 노하우를 다 전수해주고 싶어하시는 것 같다”며 놀라워했다.
한 원장은 중요무형문화재 제38호 궁중음식 기능보유자인 황혜성씨의 딸이다. 한 원장은 “연기나 음식이나 모두 ‘감각(feel)’으로 하는 것인데, 이영애씨가 연기자라서 그런지 생소한 궁중음식도 빠르게 익히는 것 같다”고 칭찬했다.
이영애는 영화 ‘봄날은 간다’ 이후 뒷산을 오르며 체력을 기르고, 어머니에게 ‘김장 담그기’ ‘김밥 만들기’를 배우며 쉬었다고 했다. 혹시 결혼 뒤 집들이 때는 ‘궁중음식’으로 대접하려느냐고 묻자 “신부 수업엔 도움이 된다”며 웃었다.
CF에서 ‘이영애의 하루’라고 불릴 정도로 일하고, 운동하고, 쇼핑하는 도회여성의 프로페셔널한 이미지를 보여주었던 이영애. 그러나 ‘대장금’ 출연 이후엔 고추장, 쌈장, 한방쌍화탕 등의 CF 출연을 제안받을 수도 있다. 이영애는 “만일 고추장 CF가 들어온다면 드라마가 성공했다는 뜻”이라며 하얀 치아를 드러냈다.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수라상과 궁중음식들
궁중의 일상식은 이른 아침 보약이나 죽(미음)을 차린 초조반(初朝飯)과 아침수라(오전 10시경)와 저녁 수라(오후 5시경)로 구성된다. 그리고 점심 때 낮것상(국수나 만두 등 면상 종류)과 밤중에 내는 야참 등 모두 다섯 번의 식사를 올린다. 평상시 수라상은 주방상궁에서 만들어 왕과 왕비가 각각 동온돌과 서온돌에서 받고 결코 겸상하지 않는다. 수라상은 밥두가지(흰수라 팥수라), 국 2가지, 김치 3가지, 찌개 2가지, 전골, 장류 외 육류 어류 구이 전유화 편육 숙채 생채 조리개 장 젓갈류 수란 회 등 12가지 찬품이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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