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드로 만든 집은 ‘누드집’. 베일에 싸인 집은 ‘배일집’, 그럼 닭똥으로 만든 집은 ‘닭똥집’?” 등 스피드와 논리와 반전을 보여준 팀은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러나 다수 응시자들은 개그와 개인기를 구분하지 못하고 좌충우돌한 끝에 40명만 2차 예심을 통과했다. 이들은 9월에 본선을 치루나 합격자는 통상 한자릿수다. 2차 예심 현장에서는 심사위원의 마음을 노린 응시자들의 읍소와 애걸복걸이 이어졌다.
● 썰렁1
심사=다른 특기 없어요?
K씨(20)=기타연주 잘 합니다.
심사=그거 말고 잘 할 수 있는 거 없어요?
K씨=물구나무서기 잘 합니다. 엄지손가락 잘라내는 마술도 하고요.
심사=평소 주위에서 웃기다고 하나요?
K씨=예.
● 썰렁2
심사=몇 학년이죠?
K양(16)=고1요.
심사=(합격하면) 합숙할 수 있나요? 고교생이.
K양=이쪽으로 나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떨어지면 내년에 또 옵니다.
심사=개그할 때 머리에 케첩 뿌리면 안 돼. 끔찍하잖아. 평소에 하는 웃긴 거 없어?
K양=이런 후렴구요. ‘요질!’ 안 웃겨요?
심사=개그는 없어요?
K양=콩글리시 수업이요. 자, 플리즈야 싯다운.
● 애걸복걸1
K군(17)=(오른다리를 머리 뒤로 꺾어 넘긴 요가 자세로) 웃어주세요. 웃어주세요.
심사=….
K군=(이번엔 양 다리를 머리 뒤로 꺾어 넘기고 두 팔로 게걸음을 걸으며) 웃어주세요. 웃어주세요.?
심사=(웃으며) 또 뭘 잘하나요?
K군=어려서부터 낙법을 잘 합니다. 어떤 자세로 쓰러져도 절대로 다치지 않게 ‘승화’시킬 수 있습니다.(철퍼덕 앞으로 쓰러졌으나 다시 동그르르 몸을 말아 일어선다.)
심사=그거 재밌네. 하지만 자학 개그로 위험해요.
K군=스탠딩 개그를 보여드리려고 했는데 전 몸으로만 웃기네요.
심사=다음 팀.
● 애걸복걸2
K씨(23)=(장미꽃을 심사위원에게 나눠준 뒤) 장미꽃을 심사위원들 앞에 놓으니 어떤 게 장미인지 잘 모르겠군요. 완전 꽃미남이시네요.
심사=….
K씨=(소주병을 꺼내며) 전 SBS 소주만 마십니다. 안주는 필요 없습니다. 당신의 고독을 씹으면 되니까.
심사=(썰렁하다는 표정으로) 어디서 왔어요?
K씨=마산에서 왔습니다.
심사=너무 웃음을 만들려고 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해봐요.
K씨=술자리에서 애드리브로 받아치면 웃긴다고 하는데, 오늘은 안 되네요. 제가 마산에서 자라서 깡 하나는 있거든요. 시켜만 주신다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 애걸복걸3
W씨(26)=(심사위원들에게 인삼을 한 뿌리씩 나눠주며) 금산 출신인데, 인삼 드시면서….
심사=(인삼을 씹으며) 이거 씻은 거 맞죠?
W씨=97년부터 계속 시험 봤는데 진짜 안 웃어주시더라. 매번 떨어뜨리는 심사위원께 한 말씀드리겠습니다. 자, 식사하셨습니까?
심사=….
W씨=안 웃긴가요? KBS에 붙은 선배가 이런 컨셉트로 나가라고 해서….
심사=재미난 걸 재미없게 하네. 개인기 없어요?
● 심사위원은 족집게
심사=가운데 키 큰 사람.
A씨(25)=저요?
심사=대학로에서 공연하던데.
A씨=잠깐 도와준 겁니다.
심사=지금 한 거 공연할 때 썼던 거 아닌가?
A씨=마로니에 공원에서 우리가 직접 만들어 썼던 겁니다.
심사=첫 번째 아이템은 다른데서 안 쓴 거지?
A씨=네. 절대로.
심사=너 나 한번 본 적 있지? 혹시 너 전유성 선배랑 갈비 먹을 때 옆에 있었지?
A씨=네…. 아뇨.
심사=전유성 선배와는 무슨 관계지?
A씨=그냥 스승과 제자 관계입니다.
심사위원들이 밝힌 심사포인트 | |
포인트 | 내용 |
장악력 | 시청자(심사위원)의 기를 꺾고 스피디하게 무대를 장악해야 한다. 위축된 모습을 보이면 불합격. 그러나 능수능란할 지라도 ‘값싼 티’가 나거나 ‘동성애 코드’를 여과없이 드러내는 등 ‘업소’의 공연 경험이 몸에 밴 경우는 제외된다. |
창의력 | 스토리가 있는 ‘개그’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성대모사 등 흉내내기는 기능일 뿐 독창성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 수 있느냐가 관건. 기존 개그프로그램의 내용 등을 반복하면 곤란하다. |
잠재력 | 다소 어눌해도 캐릭터(바보, 수다쟁이, 일그러진 표정 등)가 분명하면 대성 가능성이 있다. 이들에겐 캐릭터에 맞는 아이템을 제안하기도 한다. 개성이 맞는 서로 다른 응시생들을 엮어주기도 한다. |
긍정성 | 누군가를 비방·비하해 웃음을 자아내는 것은 ‘어두운 웃음’일 뿐이다. 또 머리에 케첩을 뿌리거나 병을 깨는 등 시청자들이 위협을 받을만한 행동도 부정적이다. |
2차 예심에는 SBSi 고대화 상무, SBS 예능총괄 CP장동욱 국장, SBSi 외주제작팀 이제권 차장, ㈜스마일매니아 박승대 사장(개그맨)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 심사의 비밀
일단 탈락시키지만, 지속적 주시가 필요한 응시자는 채점표 비고란에 ‘관리’라고 적는다. ‘관리’ 대상자들은 △체계적 훈련을 받지 못해 아이템 구성은 느슨하나 재능이 있는 경우 △‘웃기는’ 재능은 부족하나 별난 특기(미술 성악 운동 등)가 있어 개그와 접목이 가능한 경우다. 심사위원들은 “남들과 똑같이 하기보다 성악이란 특기를 이용하면 돋보이지 않을까. 아카펠라 개그도 할 수 있고…”라며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심사위원들은 약속이나 한 듯 ‘영 아니다’ 싶은 응시자에겐 절대로 웃음을 보이지 않는다. 한 심사위원은 “작은 웃음이라도 보여주면 합격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심사위원들은 ‘개인기’와 ‘개그’를 구분한다. 유명인 흉내내기로 술자리에서 친구들을 웃기는 것은 ‘개인기’다. 독립된 스토리를 독창적인 포맷에 실어 전달하는 것은 ‘개그’다. 개그맨이 되려면 ‘개인기’가 아닌 ‘개그’를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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