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은 이의방(서인석)이 조위총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서경으로 출정하는 장면을 찍고 있었다. 말에 오른 서인석은 황색 옷자락을 휘날리며 달리다가 말이 몸부림치는 바람에 떨어졌다. 다행히 서인석은 부상이 없어 숨을 돌린 뒤 다시 촬영에 임했다.
서인석의 말이 몸부림친 이유는 사람과 장비에 둘러싸여 불안해졌기 때문. 이때는 진정제도 듣지 않는다. 윤창범 PD는 “이런 경우는 무리지어 다니는 말의 본성을 이용해야 한다”며 다른 말을 한 마리 더 데려오게 했다. 동료가 보이는 것만으로도 말은 눈에 띄게 안정됐다.
이처럼 사극의 전투 장면을 찍는데는 제작진의 기발한 묘수가 이어진다. 특히 제작진이 터득하고 있는 노하우 중에는 단순하고 원시적인 수법도 많다.
말에 탄 장군의 뒤에서 많은 군졸이 함성을 지르는 장면도 입만 벙긋하게 해서 찍고 함성은 따로 녹음해 편집 과정에서 합친다. 소리에 예민한 말에 대한 배려다.
전투가 휩쓸고 간 뒤의 참혹함을 상징하는 까마귀도 ‘모셔오기’가 쉽지 않다. 윤 PD는 “까마귀를 쉽게 볼 수 없어 늘 애를 먹는다”고 말한다.
제작진은 까마귀를 유인하기 위해 깃털을 뽑지 않은 닭의 사체를 이용한다. 촬영 전날 닭의 내장을 늘어놓으면 다음날 공중에서 맴돌거나 땅에 내려오는 까마귀를 찍을 수 있다. 그래도 서너 마리 정도여서 편집을 통해 여러 마리처럼 보이게 한다.
전투에서 흘리는 ‘피’는 물엿과 초콜릿, 그리고 붉은 색소로 만들어 피 같은 점성과 색깔을 낸다. 비중있는 배우는 ‘피’가 든 작은 풍선을 입속에 숨기며 대사를 말하고 피를 흘려야 하는 순간에 풍선을 깨물어 터뜨린다. 그러나 보조 출연자들은 숟가락으로 ‘피’를 입 속에 떠주고 말 뿐이다.
윤 PD는 “전투 장면 들어가기 전에 풍선을 받는 배우는 ‘내가 떴구나’ 하고 생각하면 된다”며 웃었다.
문경=조경복기자 kath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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