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복수혈전(復수血戰)
인터넷에 떠도는 유머중 하나다. ‘복수혈전’은 개그맨 이경규(43)가 12년전 감독으로 도전했다가 실패한 영화. 얼마나 망했으면 이런 유머가 인터넷에 떠돌까. 그의 실패담은 한때 TV 코미디 프로그램의 단골 소재이기도 했다.
이경규는 그러나 영화 ‘우리가 몰랐던 세상’(가제)으로 다시 메가폰을 잡는다. “그만큼 당했으면 됐다”는 주위의 만류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북한의 남파 공작원이 겪는 문화충돌을 그렸으며 9월 촬영에 들어가 내년 3월 개봉 예정이다.
○ ‘하고 싶은 것’ 하고 싶어요
“언제까지 ‘띠용∼’(그가 만들어 낸 유행어)하면서 눈알 굴리는 개그를 하겠어요. 방송은 그저 ‘전파’입니다. 한 번 쏘면 공중에 흩어지는. 그런데 영화는 ‘작품’이죠. 온전히 ‘내 것’으로 남잖아요.”
그러나 그가 다시 용기를 내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딸 예림(9)이 학교에서 돌아와 “아빠, ‘복수혈전’이 뭐예요? 옛날에 영화 만들다가 쫄딱 망했어요?”라고 물었을 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했지만, 화가 많이 납디다. 그래서 좋은 시나리오를 잡은 김에 저질렀습니다. 더 망설이면 하고 싶은 것 못할까봐.”
○ ‘복수혈전’은 잊어주세요
‘복수혈전’은 본 사람이 거의 없는데다 비디오 대여점에도 없어 내용이 궁금했다. 그렇게 후진 영화일까.
“다시 봐도 후집디다.(웃음) 그런데, 그 땐 한국영화가 다 그랬어요. 사실 당시 작품에 비하면 그렇게 후지지도 않았어요. 다만 TV에서 눈알 굴리던 내가 갑자기 진지해지니까 웃긴 거지.”
그는 ‘복수혈전’에 대한 기억을 모두 지우려하고 있다. 얼마 전 인터넷을 검색하다 ‘복수혈전’ 포스터를 보고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
당시 기획 제작 연출 주연을 모두 했던 그는 “욕심이 너무 많았다. 한가지에만 매진할 수도 없고 결국 이도 저도 안됐다”고 실패 원인을 분석했다.
○ 톱스타 2명 이미 구했죠
“개그맨이라고 왜 영화에 대한 욕심이 없겠어요. 아무도 안 시켜주길래, ‘그럼 내가 찍지’ 그렇게 된 거에요. 심형래, 서세원 등 개그맨이 영화에 나선 것도 그런 ‘오기’ 때문이 아닐지….”
이번 영화에서 감독을 영입할까 고민했지만 “소재가 좋아 아깝더라”고 말했다. 욕심을 버렸다더니 그런 것 같지도 않다.
“개그맨이 무슨 영화냐”는 투자자를 어떻게 설득할지 궁금했다. 그는 “나를 믿고 돈을 보태주는 학창시절 동창생들, 일명 ‘묻지마 투자자’가 많다”며 “제작비(40억원 안팎)의 10% 가 ‘성금’으로 들어왔다”고 말했다. 이경규는 조만간 투자 설명회도 가질 예정이다.
배우들에게는 시나리오와 함께 손수 구구절절한 사연을 편지로 보내 톱스타급 2명을 확보한 상황이다.
○ 이번엔 북한간첩 얘기예요
‘우리가 몰랐던 세상’의 시나리오는 영화 ‘약속’ ‘와일드 카드’, 연극 ‘불 좀 꺼주세요’ ‘용띠 위의 개띠’의 작가 이만희씨가 썼다. ‘실연클럽’의 오덕제와 ‘지옥의 링’의 장영일 감독이 조연출로 참가한다.
영화의 소재는 간첩이었다가 남한에 귀순한 실존 인물의 증언을 토대로 했다.
북한 간첩은 남한의 노래와 사투리를 배운다. 그런데 남한이 빨리 변화하는 바람에 이들은 남한에서 문화 충돌을 겪는다.
“간단한 예로, ‘떡볶이’는 알고 왔는데, ‘라볶이’는 모르겠더랍니다.”
김수경기자 sk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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