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밍 풀’은 루스 랜들의 범죄심리물처럼 시작해서 ‘멀홀랜드 드라이브’식 미로로 빠지는 영화다. 이 정도만 해도 후반부 반전에 대한 힌트는 충분히 주었으니 더 이상은 설명하지 않겠다. 다만 이 영화의 반전이 하나의 해답만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은 미리 말해두어야겠다. 오히려 반전 덕택에 영화에 대한 해석 가능성은 무궁무진하게 커진다.
맘만 먹는다면 관객들은 영화를 보고 나와 오종이 들려준 이야기의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를 놓고 몇 시간이고 떠들 수 있다.
‘스위밍 풀’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이 영화의 나태함이다. 샬롯 램플링과 뤼디빈느 사니에는 몸을 던지는 좋은 연기를 보여주지만 오종 자신은 한가하기 그지없다. 사실 반전이라는 장치를 빼면 이 이야기는 아주 전통적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고전적인 할리우드 영화 ‘유령과 무어 부인’은 어떤가? 작가와 창작이라는 행위를 다루는 이 두 영화의 방식은 거의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스위밍 풀’은 좋은 배우들을 기용한 흥미로운 영화지만 이 영화의 진짜 재미는 영화가 끝난 뒤에 시작된다. 오종은 아주 단순한 공식의 이야기에 반전을 숨겨놓고 평론가들과 관객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구경하려고 하는 것 같다. 여러분이 그의 한가한 게임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스위밍 풀’은 결말이 모호한 평범한 스릴러로 남는다. 하지만 여러분이 맘먹고 영화의 도전을 받아들인다면 수십 가지의 현실들이 엇갈리는 흥미진진한 미로에 뛰어들 수 있다. 그 미로는 여러분 자신이 만든 것이다. 오종은 거기로 가는 문만 알려주었을 뿐이다.
듀나 영화평론가 djuna01@hanmail.net (주간동아 4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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