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영화]사라진 정 반장 '오! 헷갈려라'

  • 입력 2003년 9월 16일 17시 44분


영화 후반 뚜렷한 이유없이 화면에서 사라진 정 반장역의 이문식. 사진제공 KM컬처스
영화 후반 뚜렷한 이유없이 화면에서 사라진 정 반장역의 이문식. 사진제공 KM컬처스
조로증(早老症)에 걸린 12세 소년 봉구(이범수)의 눈으로 본 세상 이야기와 형제애를 다룬 영화 ‘오! 브라더스’. 5일 개봉된 이 작품은 흥행 선두를 다투며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 이 작품이 상영 중인 서울의 한 극장. 영화가 끝났음을 알리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자 객석 여기저기에서는 보기 드물게 박수도 터져 나왔다.

하지만 “어, 정 반장은 어떻게 된 거야?”라며 결말 부분에 대해 어리둥절해 하는 관객들의 목소리도 박수 소리에 섞여 있었다. 극중 봉구의 이복형이자 악덕 채무를 받아주는 해결사로 등장하는 상우(이정재)와 갈등을 벌이는 악덕 경찰 정 반장(이문식)이 막판에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기 때문이다.

지난달 열린 ‘오! 브라더스’의 기자 시사회는 또 다른 결말을 보여주었다. 분명 정 반장은 막판까지 스크린에서 ‘살아’ 있었다.

‘정 반장 미스터리’의 내막은 이렇다.

상우와 정 반장이 마지막으로 대결하는 장면 등 5분 정도가 최종 편집에서 ‘잘린’ 것이다. 시사회의 러닝 타임은 1시간51분이었지만 관객이 실제 본 것은 1시간46분짜리.

이에 대해 김용화 감독은 “시사회 뒤 제작사 등 여러 영화 관계자들이 끝 부분이 좀 느슨하다는 의견을 주었다”며 “최종 편집은 내가 선택했고, 책임도 내 몫”이라고 덧붙였다. 그 역시 “영화를 꼼꼼하게 보는 관객이라면 정 반장이 사라진 대목이 아쉬울 것”이라고 인정했다.

실제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가 시사회와 다른 것은 드문 일은 아니다. 시사회를 마친 뒤에도 감독은 물론 제작사와 배급사 등 영화관계자들이 “영화를 재미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이유로 편집 과정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 브라더스’의 정 반장 출연 장면이 포함된 ‘5분 편집’은 좀 심했다. 정 반장은 상우와 ‘먹이 사슬’ 관계에 있으면서 사회악을 상징하는 존재로 영화의 중요한 축이다. 특히 협박을 받은 봉구가 울면서 형 상우가 찍은 경찰서장의 비리사진을 정 반장에게 가져다주려다 형이 말리는 장면이 나온 뒤여서 관객들은 당연히 “그 다음에는?”이라고 물을 수밖에 없다.

재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화의 완성도가 아닐까. ‘재미 귀신’ 좇느라 정신없는 한국 영화에 대해 ‘사라진 정 반장’은 이런 충고를 보낼 지도 모른다.

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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