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광고 공화국’ 이창현 국민대 교수·언론정보학 우리나라가 간접광고 공화국으로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지난 몇 달 동안 TV 오락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이 입고 나오는 옷에 붙어 있는 ‘C.O.A.X.’ ‘asap’ ‘Quick Silver’ ‘Banila B.’ ‘Old & New’ 등의 상표가 방송위원회의 심의에서 간접광고로 지적됐다.
최근 들어서는 간접광고가 더 지능화, 심화되고 있다. 한 회사의 상표를 조금 바꾸어 드라마의 중요한 구성요소로 사용하거나, 심지어는 전체 방송사 차원에서 특정 문화행사를 조직적으로 간접광고해서 물의를 빚는 경우도 있다.
6월말 종영한 KBS 드라마 ‘저 푸른 초원 위에’에서는 자동차영업소를 배경으로 ‘100% 신차 세라티’라는 광고문안을 사용했는데, 이것은 대우자동차의 ‘라세티’를 철자만 바꾸어서 사용한 것이었다. 7월말 종영한 SBS 드라마 ‘스크린’은 ‘세가박스’라는 복합상영관을 배경으로 했는데, 이는 ‘메가박스’를 연상케 한다. MBC는 볼쇼이 아이스쇼의 홍보를 위해 자사 드라마(‘백조의 호수’,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와 연예오락 프로그램(‘가요콘서트’, ‘코미디하우스’)의 구성 자체를 바꾸는 노력(?)도 마다하지 않았다.
올 8월까지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 심의내용 총 268건 중 117건이 간접광고인 것을 봐도 그 심각성을 알 수 있다. 방송 심의위원들의 가장 중요한 책무가 프로그램 속에 숨어있는 간접광고 찾아내기가 아닌가 생각될 정도다.
지상파 방송에는 광고시간이 따로 있고, 이 시간을 광고주에 팔아서 방송을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2002년 한 해 동안 지상파 방송은 수천억 원의 흑자를 남겼다. 그럼에도 방송사들은 간접광고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간접광고는 기업이 정상적인 광고시장에서 광고시간을 구매하지 않고, 은밀하게 제작자에게 부탁해 출연진의 의류나 대사, 그리고 무대장치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상품을 광고하는 것이다. 일반광고와는 달리 일종의 ‘암시장’에서 거래되는 불공정 광고인 셈이다.
시청자의 입장에서도 문제는 크다. 프로그램과 구분되는 직접광고에 대해서는 ‘광고니까 그러려니’ 하는 면역체계를 갖고 있지만, 간접광고는 시청자들에게 프로그램 내용인 것으로 착각하게 해 광고효과를 더 높일 수 있다.
시청자들은 이미 케이블 TV 홈쇼핑 채널을 통해 상품판매 광고를 24시간 보고 있으며, 기타 유선방송에서도 광고인지 프로그램인지 모를 프로그램들에 노출돼 있다. 광고 방송의 홍수 속에서 지상파 방송마저 간접광고로 도배되고 있는 현실은 안타깝다.
지금은 간접광고가 지상파 방송의 신뢰성을 바탕으로 지속되고 있지만, 이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지상파 방송의 신뢰도 함께 추락할 것이다. 간접광고를 통해 조그만 이익을 얻고자 하는 제작자들의 잘못된 발상이 그들이 몸담고 있는 지상파 방송 전체의 품격과 신뢰를 깎아 내리고 있다.
이창현교수 chlee@kookmi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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