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은 죽고 우정은 살다
영화는 2080년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무단이탈 사이보그를 제거하는 경찰 R(유지태)과 수명이 7일밖에 남지 않은 사이보그 리아(서린)의 사랑을 담았다. 리아가 살 수 있는 길은 유전자 구조가 같은 인간의 몸에 리아의 기억을 주입하는 ‘영혼 더빙’을 하는 것. 조사 결과 그 인간은 이 도시에서 몸을 팔며 살아가는 시온(이재은)으로 드러난다. R은 사랑을 위해, 역시 수명이 다 된 전투용 사이보그(정두홍)는 자신의 영원한 ‘삶’을 위해 각각 시온(이재은)을 희생시키려 한다.
이처럼 영화의 주장은 SF 멜로였다. 하지만 이 작품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왜 인간인 R이 사이보그 리아를 그토록 치열하게 사랑하는가를 충분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리아를 살리기 위해 동료를 희생시키고 더구나 같은 피가 흐르는 인간을 제물로 삼으려는 R의 행동은 공감을 얻지 못해 내내 불편하다. R과 리아의 사랑은 객석으로 전해지지 않는 ‘그들만의 사랑’일 뿐이다.
또 하나 성경에서 지명을 따온 시온의 캐릭터. 시온은 몸을 팔지만 삭막한 도시의 여신상 옆에 꽃밭을 가꾸는 구원과 희망의 상징이자 R과 리아를 통해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배워가는 존재로 설정돼 있다. 도입부에서 꽃밭에 아버지를 묻으며 “사이보그와 무슨 사랑이냐”고 말하던 시온이 R과 리아를 다시 묻는 장면은 이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하지만 R과 리아의 사랑이 흐릿해진 탓에 그 사랑에 대한 시온의 주장마저 설득력이 떨어진다.
작품의 중심을 이루는 R-리아-시온 등 메인 캐릭터가 ‘죽는’ 바람에 오히려 경찰팀장인 노마(윤찬)와 킬러가 강한 인상으로 남는다.
● 드라마는 죽고 비주얼은 살다
기본 설정이나 화면의 분위기에서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의 흔적이 있다는 지적이 있지만 ‘내츄럴 시티’는 분명 한국 영화계의 비주얼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갈색 톤으로 치장한 미래 도시와 우주왕복선이 오가는 ‘무요가’ 스테이션, R과 리아가 사랑을 나누는 가상체험 공간 등 컴퓨터그래픽(CG)이 사용된 화면들은 관객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CG 작업에만 1년 가깝게 매달린 제작진과 ‘유령’에서 이미 재능을 보여준 민 감독의 노력 덕분이다.
이 같은 비주얼의 성과는 다시 짜임새가 떨어지는 드라마에 대한 짙은 아쉬움을 되새기게 한다.
피아(彼我)가 구별되지 않아 선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액션도 ‘매트릭스’ 형의 하이테크형 액션에 익숙한 관객의 눈높이에 맞출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마케팅 비용을 포함하면 이 작품의 총 제작비는 1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상당수 관객들이 봐줄 것을 기대하는 상업영화라면 비주얼의 ‘층수’를 높이기보다는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러브 스토리와 선악이 분명한 캐릭터 등 쉽고도 단단한 설계도를 만드는 데 더 힘을 쏟아야 하지 않았을까.
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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