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이탈리아에서의 한탕’으로 시작한다. 늙은 도둑 존 브리저(도널드 서덜랜드 분)가 이끄는 전문도둑 일당이 베니스에서 몇 천만 달러짜리 금괴를 훔쳐내는 데 성공하지만 일당 중 한 명의 배신으로 일은 엉망이 된다. 브리저는 살해당하고 간신히 빠져나온 일당은 브리저의 딸 스텔라(샤를리즈 테론 분)와 함께 그 금괴를 훔칠 계략을 다시 꾸민다.
원작의 매력은 철저한 비도덕성이었다. 한마디로 잘난 도둑이 ‘한탕’한 뒤 여자까지 챙긴다는 이야기였으니까. 하지만 리메이크 버전은 어느 정도 절제한다. 영화는 이들이 도둑이라는 사실보다 한 분야에서 꽤 수준 높은 전문가라는 점에 더 비중을 두고 복수극이라는 선악 구조를 첨가한다. 이 영화에서 악당인 스티브(에드워드 노튼 분)가 금괴를 털리는 이유도 그가 ‘악당이기 때문’이다.
범죄자 주인공들을 지나치게 잘봐준 듯한 느낌이 들지만 결과는 예상외로 쿨하고 즐겁다. ‘이탈리안 잡’은 일종의 스릴러물이다. 조금 독특한 전문가들이 모여 비폭력적이지만 은근히 위험한 게임을 벌인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런 영화에서 중요한 건 두뇌와 전문기술이고 폭력과 폭발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
요즘 영화계 전반의 기준으로 보면 온화하기 짝이 없는 영화지만 ‘이탈리안 잡’은 그래도 꽤 실속 있는 자동차 추적 장면을 품고 있다. 다만 그 장면은 무게감과 파괴성을 내세우는 일반 할리우드 영화의 기준과는 거리가 멀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주인공들이 3대의 미니 쿠퍼에 나누어 타고 로스앤젤레스의 도심가와 하수도를 질주하며 2500만 달러짜리 금괴를 훔치는 장면인데, 둔하고 커다란 미제 자동차 사이를 이 복고풍의 소형차들이 소매치기 소년들처럼 잽싸게 누비는 장면들을 보고 있노라면 은근히 통쾌하다.
듀나/ 영화평론가 djuna01@hanmail.net (주간동아 404호)
Tips - 미니 쿠퍼
초소형 차 가운데 하나인 미니 쿠퍼는 이 영화에서 ‘주연급’ 역할을 한다. 1950년대 수에즈 원유 파동 때 영국에서 처음 등장한 새로운 타입의 이 자동차는 전 세계적으로 하나의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잡았고 영국에서만 500만대 이상 팔려나갔으며 비틀즈 멤버들이나 영국 왕실 가족까지 운전했던 차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클래식 스타일의 미니 쿠퍼는 1960~1967년 영국에서 시판된 것인데 오늘날까지도 이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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