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푸드]“장금아! 수라상은 손맛이란다”

  • 입력 2003년 10월 23일 17시 15분


코멘트
《“장금아! 이리 와 보려무나. 내 요즘 너를 보면 뿌듯하다. 네 인기를 타고 궁중음식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부쩍 높아졌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손이 많이 가서 귀찮은 음식’이라며 주부들이 꺼리던 궁중음식이 이제는 ‘한 번쯤 해봐야 할 음식’으로 발돋움했더구나.”“그렇사옵니까? 다행이옵니다. 여러 상궁님과 한복려 선생님 덕분이옵니다.”“너는 중종 때 궁중 최고의 요리사였으며 또한 조선조 최초로 임금의 여성 주치의였다. 나는 현대에 궁중음식의 맥을 잇기 위해 노력하는 중요무형문화재 38호 기능보유자 후보다. 너와 내가 오늘 만났으니 궁중음식 몇 가지를 논해보자꾸나.”이렇게 해서 역사 속 인물 대장금과 궁중음식연구원 한복려 원장의 음식에 대한 가상의 대화가 시작됐다. 한 원장은 MBC 드라마 대장금에 나오는 궁중요리를 자문하고 있으며 대장금 역을 맡은 탤런트 이영애가 한 원장에게서 2주일 동안 궁중요리를 배운적이 있다.》

한=어린 시절 네가 친구 연생이와 함께 주방에 들어갔다가 임금의 밤참을 엎은 적 있지? 그때 한 상궁이 화급히 만들어 낸 게 바로 <생란>이었다.

장=정말 놀랍고도 신기했습니다. 생각시(어린궁녀)들이 다듬던 생강만으로 그처럼 맛있는 간식을 만들어내다니요.

한=중종이 생강을 싫어한다며 언짢아 하다가 맛을 보더니 아주 좋아했지? 생란은 이렇듯 매운맛과 단맛이 어우러져 절묘한 맛이 난다.

한복려 궁중음식연구원 원장(왼쪽)에게서 궁중음식을 배우고 있는 탤런트 이영애. 동아일보 자료사진

장=어떻게 만드는 것인지요.

한=생강을 얇게 썰어 믹서에 갈아라. 고운 체에 생강을 밭친 뒤 네 번을 씻는데 처음 두 번의 물은 가루를 가라앉혀 생강녹말을 건져내고 나머지 두 번의 물은 버리면 된다. 씻어낸 생강 건더기에 설탕, 소금을 넣고 물을 부어 끓이면서 반쯤 졸아붙으면 물엿을 넣고, 거의 졸았을 때 꿀을 넣는다. 맨 마지막에 생강녹말을 넣고 서서히 졸여주면 된다. 한번에 많은 양을 만들어 잘 봉해뒀다 쓸 때마다 모양을 만들어 잣고물을 묻혀 내면 좋다. 철 지난 봄여름 생강은 못쓴다. 살이 많고 쪽수가 적은 게 좋다.

장=정 상궁 마마님이 최고상궁이 되신 뒤 임금님께 첫 상을 올릴 때 만들었던 음식 중 <맥적>과 <포다식>이 있었습니다. 맥적은 조선 궁중음식이 아닌 걸로 아는데요?

●"한국대표 양념은 간장"

한=하하. 맞다. 고구려의 음식이지. 그렇지만 너도 봤다시피 임금이 담백한 맛이 난다고 아주 좋아하지 않더냐. 돼지불고기의 원조가 바로 맥적이다. 불고기를 한국의 대표 음식으로 치는 이유는 한국의 대표 양념인 간장을 썼기 때문이다. 그런데 간장 대신 또 다른 대표 양념인 된장을 쓰면 이렇듯 고기 특유의 누린내가 사라진다.

장=제가 먹어보니 돼지고기 목살에 달래와 부추를 송송 썰어 넣고 다진 마늘과 양념장을 끼얹어 구운 것 같았습니다.

한=양념장은 어떻게 만들었더냐.

장=된장에 물을 넣어 묽게 푼 다음 국간장 2작은술, 청주 1큰술, 조청 1큰술, 설탕 2분의1큰술, 참기름 2분의1큰술, 깨소금 2분의큰술을 넣습니다.

한=포다식은 육포를 다식판에 찍어낸 것이다. 원래 다식판은 송하다식처럼 간식을 만들어내는 판이지 않느냐. 그런데 반찬도 만들 수 있다. 먼 훗날 임금이 되실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도 포다식을 좋아했다.

장=육포를 갈아야 하므로 표면에 먼지나 이물질이 없도록 잘 닦는 게 중요하겠어요.

한=그렇지. 손질한 육포를 불에 살짝 구운 다음 잘게 잘라라. 믹서에 육포와 볶은 깨를 각각 넣어 곱게 간 뒤 육포 가루 100g에 깨가루 2큰술, 참기름 2큰술, 꿀 3큰술을 넣어 반죽을 해라. 다식판에 참기름을 바른 다음 반죽을 넣고 꼭꼭 박아내면 된다.

장=가장 인상 깊었던 음식은 뭐니뭐니 해도 <죽순채>이옵니다. 정 상궁 마마가 해주신 죽순채에 설탕 대신 홍시가 들어간 사실을 금영이도 몰랐는데 제가 알아내 ‘절대 미각’이라는 칭찬을 듣지 않았습니까.

한=죽순은 사실 당시 가장 많이 쓰이던 채소 중의 하나였다.

장=만드는 법을 배웠사옵니다. 죽순을 손질해 쌀뜨물과 마른 고추를 넣고 삶아 식힌 뒤 물을 여러 차례 갈아서 아린 맛을 일단 없앱니다. 이 죽순의 껍질을 벗기고 빗살모양으로 납작하게 썹니다.

쇠고기 100g과 표고버섯 1장을 채 썬 뒤 고기양념(간장 1큰술, 설탕 2분의1큰술, 다진 파 2작은술, 다진 마늘 1작은술, 깨소금 1작은술, 참기름 1작은술, 후춧가루 약간)으로 무쳐 식용유에 볶습니다.

미나리는 데쳐 헹궈 4cm 길이로 자르고 숙주도 데칩니다. 붉은 고추는 반으로 갈라 씨를 뺀 뒤 채 썹니다. 이 모든 재료에 간장 2큰술, 물 2큰술, 식초 2큰술, 설탕 1큰술, 깨소금 2작은술을 넣고 무친 뒤 채 썬 달걀지단을 얹어내면 됩니다. 위의 재료 중 설탕은 모두 홍시로 바꾸어도 상관이 없겠사옵니다.

●"전통음식 재현 자긍심"

한=나에게는 가장 인상 깊은 음식이 바로 <석류탕>이니라. 너는 어선경연대회를 앞두고 잃어버렸던 밀가루로 석류탕을 끓여 퇴직하는 노 상궁에게 줬었지? 나는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할 때 함께 가서 이 탕을 내놓기도 했다.

장=아유.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해요. 선생님은 다른 이유로 아찔하셨겠어요.

한=석류탕은 사실 다른 만두 만들 듯이 만들면 된다. 반죽하고, 육수를 만들고, 쇠고기 닭살 표고버섯 두부 무 미나리 숙주 등으로 만두소를 만든 뒤 양념과 잘 섞어 만두를 빚어내면 된다. 문제는 주머니 모양으로 빚어내는 손맛이지.

장=전통음식을 현대에 되살린 저와 한 선생님이 자랑스러워요.(촬영협조=궁중음식연구원, 광주요)

글=하임숙기자 artemes@donga.com

사진=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