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프로그램들은 고단한 일상에 지친 시청자들이 잠시 영화의 세계로 빠져들 수 있게 도와준다. MBC ‘출발! 비디오여행’과 SBS ‘접속 무비월드’가 그것이다. 두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의 요구에 부응하듯 같은 시간대인 일요일 낮 12시10분부터 1시간동안 방송된다.
이들 프로그램은 극장에 못가는 시청자들에게 영화의 세계를 맛보기로 보여줄 뿐 아니라 직접 영화관으로 안내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들이 흥행성 있는 개봉작만 소개하고 있는 게 문제다. 프로그램 구성에서도 이런 문제가 드러난다. MBC는 ‘개봉박두’ ‘뜰까?’ ‘커밍 순(Coming Soon)’ 등 개봉작 코너가 전체 5개 중 3개나 차지하고 있다. SBS의 ‘접속 시사회’ ‘시청자 시사회’도 개봉작 위주의 코너들이다.
10월 한 달 동안 MBC는 ‘위대한 유산’(개봉일 10월 24일)을 3회, ‘영어완전정복’(11월 5일)을 2회에 걸쳐 한 아이템으로 방영했다. 또 SBS는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10월 24일)를 4회, ‘위대한 유산’을 3회, ‘은장도’(10월 24일)를 3회씩 방영했다. 한 코너가 최소 5분 이상이니, 이들 프로그램에 나온 개봉 영화들은 상당 시간 홍보될 수 있었던 것이다.
프로그램의 소재는 한결같이 개봉 직전의 대형 기획사 작품이었고, 방영 내용도 영화의 자료 화면을 간단하게 편집한 것이 전부였다.
이쯤 되면 영화소개 프로그램은 개봉영화의 홍보 잔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흥행 영화를 홍보하려는 대형 기획사의 욕구에는 충실하나 다양한 영화 정보를 얻으려는 시청자들의 욕구는 무시되는 것이다.
영화소개 프로그램도 영상문화의 다양성을 제고하는 방안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대안적이며 실험적인 작품의 소개에도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영상문화의 발전은 일부 대형기획사의 흥행작으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달 30일 끝난 ‘인디 다큐 페스티벌 2003’에서는 김동원 감독의 ‘송환’이 폐막작으로 상영됐다. ‘상계동 올림픽’을 만들었던 김 감독이 비전향 장기수 송환 문제에 관심을 갖고 10년 이상 걸려 만든 작품이다.
이런 작품이나 신예 감독의 실험적 작품 하나쯤을 소개할 수 있는 정규 코너를 만들어달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일까. 이 같은 ‘작은 영화’에 대한 배려는 한국 영상문화발전을 위해 지상파 방송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은 아닐지.
이창현 교수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chlee@kookmi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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