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을 좋아하는 사람, 또는 와인을 좋아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이맘때는 특별한 시기다. 들뜬 마음으로 뭔가를 기다리는 나날이다. 이들을 들뜨게 하는 건 11월 셋째 주 목요일 0시, 그 시간에 드디어 올해의 프랑스산 햇와인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보졸레 누보 시음회는 한국에 상륙한 지 불과 몇 년 만에 떠들썩한 축제로 자리잡았다. 이 와인의 생산지인 프랑스 보졸레 지방 농민들도 깜짝 놀랄 만한 급성장일 것이다. 여기엔 몇 년 전부터 불기 시작한 와인열풍과 상혼이 한몫했지만 프랑스측의 치밀한 마케팅이 먹혀든 것도 크게 작용했다.
비록 우리나라나 일본이 유난한 면이 있긴 해도 생판 들어보지도 못한 보졸레라는 이름을 세계에 알린 건 보졸레 지방 와인업자와 프랑스 정부의 힘이다.
그리고 그 같은 성공의 이면에는, 다시 말해 와인을 제대로 마실 줄 알아야 교양인으로 대접받는다는 다소 황당한 분위기마저 형성되고 있는 동양의 한 작은 나라 사람들로 하여금 졸린 눈을 비비며 한밤의 시음행렬에 동참하게 하는 데는 아마도 ‘프랑스’라는 브랜드의 후광도 한몫했을 것이다. 이를테면 보졸레 누보가 프랑스가 아닌 이탈리아나 미국, 호주, 칠레에서 건너온 것이었다면 이렇게 눈부신 성장을 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늦은 밤 상기된 표정으로 보졸레 누보를 마시는 이들에겐, 그건 단지 한 잔의 와인을 마시는 데 그치지 않고 프랑스 와인의, 저 깊고도 영광스런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건 ‘프랑스’라는 고급 브랜드를 사는 것과도 같다. 프랑스에는 헤르메스나 이브생로랑 등 이른바 명품 브랜드가 수없이 많지만 최고의 브랜드는 ‘문화 국가’로서의 프랑스 그 자체다. 프랑스는 이 점을 잘 알고 있기에 문화에 대한 투자가 대단하다. 1980년대 초반 비사회주의 국가로서는 처음으로 문화부를 창설한 것도 프랑스였다.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은 “사회주의 혁명은 그것이 문화의 영역으로 확산되지 않으면 말더듬이에 그칠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프랑스의 유별난 자존심은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다. 미국의 기세에 맞서 가장 따끔하게 한마디씩 하는 나라도 프랑스인데, 그 같은 도도함에는 프랑스인들의 문화적 우월감이 배어 있다. 프랑스의 농민운동가 조제 보베가 맥도날드 매장을 부수는 장면을 보면서 프랑스 국민들이 쾌감을 느꼈던 것 역시 그런 연유에서다. 그에게 로마시대 시저의 침략에 맞서 싸웠던 골족의 영웅인 ‘아스테릭스’라는 별명을 붙여준 것도 로마제국에 비견되는 오늘날의 미국을 의식한 것이다.
‘문화 강대국’ 프랑스의 기원은 16세기 이래 프랑스의 궁정문화다. 일찍이 종교분쟁을 끝내고 강력한 중앙집권적 국가를 세운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정문화는 모든 유럽의 표준이 됐다. 태양왕 루이 14세 시대는 오늘날 글로벌 스탠더드에 비견될 ‘프렌치 스탠더드’가 확립된 시기였다. 러시아 차르의 궁정에서도 프랑스어가 공식어였다. 프로이센의 궁정에서도 왕족과 귀족들은 프랑스어를 사용했다. 이탈리아에서 발흥한 르네상스가 왜 이탈리아어 ‘리나시타(재생)’ 대신 프랑스어 르네상스로 불렸는지도 수긍이 간다.
오늘날 프랑스의 높은 콧대가 미국 중심의 경제적 문화적 침투 앞에 흔들리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타인의 취향’(사진)이라는 프랑스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할리우드 영화와는 분명히 다른 색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중소기업 사장인 카스텔라라는 남성이 있다. 그는 돈은 많지만 문화적 교양이 없다. 그는 영어회화 선생으로 채용하려고 했다가 퇴짜를 놓은 여주인공 클라라가 연극 무대에서 열연하는 것을 보고 문득 사랑을 느낀다. 자신을 쫓아다니는 카스텔라에게 클라라는 자기 주변의 예술가들을 소개해준다. 애처롭기도 하면서 재미있는 건 돈 많은 카스텔라가 가난한 예술가들로부터 늘 불쌍할 정도로 조롱당한다는 사실이다. 예술가들의 속물성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돈 안 되는 예술과 인문학적 교양이 막다른 궁지에 몰리고 있는 이 실용주의 시대에 흔히 볼 수 있는 풍경과는 조금 달라 보인다.
이명재 자유기고가 minho1627@kornet.net (주간동아 4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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