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들여다보기]'日방송 베끼기' 언제까지…

만델라식 사면과 방송의 모방

요즘 정치권에서는 ‘만델라식 사면’ 얘기가 나온다. 지난 대선 때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나 할 것 없이 불법적인 정치자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니, 차제에 ‘있는 그대로’ 고백하고 사면한 뒤 정치제도를 고쳐보자는 주장이 그것이다.

방송계도 ‘만델라식 사면’이 필요한 분야가 있다. 방송의 모방과 표절이 그것이다. 방송의 모방과 표절은 한국 방송의 고질이었다. 1970년대에는 PD들이 부산에 가서 일본 TV를 보고 프로그램을 모방했고, 80년대에는 직접 일본으로 출장 가서 베낄 프로그램을 봤다. 90년대 후반부터 한일간 문화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전면적인 모방은 어려워졌으나 은밀한 모방은 계속되고 있다.

최근 KBS와 SBS가 가을 개편에 선보인 프로그램 중에서 일본 TV의 프로그램을 모방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급기야 일본 후지TV는 최근 KBS2 ‘스펀지’(토 오후 6·40)와 SBS ‘TV 장학회’(일 오후7·00)가 자사의 ‘트리비아의 샘’을 베꼈다며 이들 방송사에 해명을 요구하는 서면 질의서를 보내기에 이르렀다.

참으로 방송인들이 고개를 들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어떻게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이러고도 방송이 대중문화 창달에 기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방송인들은 일단 소나기를 피해보자는 구태에서 벗어나 근본적인 자기반성과 처방을 강구해야 한다. 차라리 방송인들 스스로 모방과 표절이 만연하고 있음을 ‘고해(告解)’하고 이러한 구조를 바꾸려는 노력을 기울였으면 한다.

현재 한국의 방송사는 졸속 프로그램의 생산공장이고, PD는 그 공장의 컨베이어시스템에 딸린 관리요원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공장의 평가 잣대는 시청률이다. 이 때문에 PD들은 모방과 표절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고 창의성과 실험성을 추구하는 PD는 공장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불행히도 방송의 모방과 표절은 방송의 문제에 끝나지 않는다. 바로 대중문화로 이어진다. 방송을 통해 대중문화가 확대 재생산되기 때문에 문화의 정체성이 훼손될 수도 있는 것이다. 모방과 표절은 또 경제적 대가도 치러야 한다. 일본 프로그램 모방은 저작권 침해로 이어져 언제 거액의 배상을 해야 할 지 모를 일이다.

방송인들에게 부탁한다. 오늘날 한국 방송계에 만연된 일본 방송 모방의 실태를 ‘만델라식 사면’으로 털어내고 독창적인 방송문화를 이룰 수 있는 제작시스템을 만들기를 말이다.

이창현 교수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chlee@kookmi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