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화, 홍련’을 찍을 때 촬영장에 찾아가 임수정을 훔쳐봤다. 소녀같이 작고, 맨발에 창백한 얼굴, 차갑고 도도하고 자존심 센 분위기가 좋았다. ‘예뻐서 배우 된’ 것과는 달랐다. 그런데 임수정과 대면하니 생각보다 키(1m67)가 크더라. (웃음)
△임=난 원래 ‘장화, 홍련’의 수미에 가깝다. 차갑고 어둡고 건조하다.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표정도 없다. 이번 연기 속에서 나는 변했다. 긴장되고 갇혀져 있던 것에서 열림으로, 차가운 것에서 따뜻함으로. 사람을 더 좋아하게 됐다.
△이=민아의 장애는 누구나 안고 살아갈 법한 콤플렉스와 맞닿아 있다. 민아는 기형인 왼손을 장갑으로 가린 채 살아가지만, 사람에겐 누구나 마음속에 ‘장갑’이 있다. 아픔, 슬픔, 안타까움 등….
△임=차가우면서도 따뜻한, 소녀인데 여자인… 이런 복합적인 민아의 캐릭터가 나를 끌어당겼다. 민아는 선천성 심장병으로 왼손가락에 장애를 갖고 있다. 처음 연기에 고민했다. 장애의 슬픔과 10대의 사랑이 내 안에서 충돌했기 때문이다. 장애를 누구나 안고 살아가는 마음속 멍울로 해석하면서 수수께끼가 풀렸다. 실제 내 손은 아주 차갑다. 낯선 이와 악수할 때는 쑥스럽고 미안한 감정도 든다. 민아도 그런 감정의 상태가 아닐까.
△이=‘…ing’란 제목 자체가 이미 지금 상황은 곧 추억이 될 것이란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서 추억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래서 추억이 그렇듯, 민아의 캐릭터를 부분부분 정지화면처럼 보여주고 싶었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그녀의 귀, 뒷덜미, 발처럼 잘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사랑스럽게 살피고 바라보기를 원했다.
△임=감독님과 나이차가 네 살밖에 나지 않는다. 동성(同性)이어서 공감하는 부분도 많았다. 감독님은 촬영 내내 나에게 별도의 주문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렇게 나가. 계속”하고만 말했다. 그건 내가 잘 나서가 아니고 민아를 바라보는 우리 둘의 시선이 일치했기 때문일 것이다.
정리=이승재기자 sjda@donga.com
●…ing는
로맨스뿐 아니라 아빠와 사별한 뒤 홀로 사는 엄마 미숙(이미숙)과 민아의 모녀 관계가 비중 있게 그려낸 영화 속에서 민아는 친숙함의 표시로 엄마의 이름을 부를 정도다. 그만큼 모녀관계는 파격적이지만 또한 애틋하고 감동적이며 사랑스럽다. 다음은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
△민아=괜찮은 남자 있으면 시집가. 지금이야 화장발로 대충 커버하지만 좀더 늙으면 어쩔라고 그래? 나이 들면 자식이고 뭐고 다 소용 없는 거 알지?
△미숙=왜, 애인 생기니까 엄마고 뭐고 남자가 최고인 거 같니?
△민아=나 시집가면 미숙이 되게 쓸쓸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미숙=우리 민아가 그렇게까지 얘기하면 내가 곧 한 놈을 물어올게. 돈 많고, 맘 좋은 놈으로. 너 아빠라고 부를 자신 있어?
△민아=싫어. 친엄마도 이름 부르는데. 그냥 이름 부를 거야. 호동아! 이렇게.
△미숙=으윽. 그건 아니야. 넌 이렇게 부르게 될 걸? 원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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