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1일 개봉한 영화 ‘올드 보이’는 박스오피스에서 3주째 정상을 지키며 인기를 끌고 있지만 서울 종로구 관철동 시네코아에서는 이 작품을 볼 수 없다. 5개 스크린이 있지만 ‘올드 보이’가 상영되지 않는다.
시네코아의 한 관계자는 “작품성이 뛰어난 데다 관객이 많이 몰리는 흥행작을 걸고 싶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느냐”며 “배급사인 쇼이스트 측이 프린트 제공을 거부했다”고 밝혔다. ‘올드 보이’에 앞서 쇼이스트 배급 영화인 ‘아카시아’ 상영을 거부한 탓에 이른바 ‘괘심 죄’가 적용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쇼이스트 김동주 대표는 “배급팀에 알아본 결과 ‘아카시아’의 경우 프린트와 예고편을 보낸 상태에서 시네코아 측이 상영을 못하겠다는 통보를 해온 것으로 확인됐다”며 “서로의 신뢰가 깨져 생긴 결과”라고 말했다.
멀티플렉스가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극장의 입김이 세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작은 극장에서는 배급사의 눈치를 살펴야한다고 주장한다.
흥행 예상작을 중심으로 작은 영화를 함께 파는 ‘끼워 팔기’ 관행은 심각하다. 서울 시내 한 극장의 프로그래머는 “‘황산벌’과 ‘매트릭스 3 리로디드’를 받기 위해 극장에서 원하지 않는 다른 영화를 상영해야 했다”고 말했다.
영화계의 ‘고래 싸움’에 제작사가 피해를 보는 일도 벌어졌다. 멀티플렉스인 메가박스와 롯데시네마가 1일 CJ엔터테인먼트에 ‘낭만자객’을 상영하지 않겠다는 공문을 보낸 것. 이 작품의 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가 ‘조폭마누라2’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등을 배급하면서 같은 계열사인 멀티플렉스 CGV에 비해 프린트를 적게 주고 배우의 무대인사 등 마케팅에서도 ‘차별 대우’를 했다는 것이 메가박스와 롯데시네마 측의 주장.
이 사건은 막강한 배급라인을 보유한 데다 국내 극장 중 관객 점유율 1위인 CGV, 2위 롯데시네마와 3위 메가박스의 연합 대결로 영화계에서 관심을 끌었다. 결국 3사 대표가 5일 긴급회동을 가진 뒤 7일부터 ‘낭만자객’을 두 멀티플렉스에서 상영하는 것으로 수습됐다. 그러나 이 영화 제작사인 ‘두사부필름’은 가장 중요한 첫 주 흥행에 적지 않은 차질을 빚었다.
이처럼 중소 배급업자는 극장에, 작은 극장은 대형 배급사에,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멀티플렉스는 ‘힘이 센’ 멀티플렉스에 불이익을 받는 ‘먹이 사슬’의 폐해가 심각한 실정이다. 한 배급업자는 “‘끼워 팔기 등 힘의 논리가 영화시장을 지배한다면 상업성이 떨어지는 작은 영화와 작은 극장은 존재하기 어렵다”며 “영화의 다양성이 사라지면 그 피해는 결국 관객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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