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영화상 중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아카데미영화제에서 주는 오스카상. 요즘 영화사들은 작품수상을 겨냥해 치열한 로비작전을 펼치고, TV 연예 프로그램들과 영화잡지들은 과연 어떤 작품이 수상작이 될지 점치느라 분주하다. 영화상에 대한 관심이 높은 이유는 ‘영화상 수상=흥행 보증수표’라고 여기기 때문. 하지만 최근 UPI 통신은 영화상을 받는 것이 꼭 흥행 실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UPI 보도에 따르면 특히 블록버스터 영화의 경우 영화상의 프리미엄이 미미한 편. 이달 중순 전 세계에서 개봉된 ‘반지의 제왕-왕의 귀환’의 경우 내년 아카데미 작품상의 강력한 후보로 떠오른 작품이지만 수상여부가 흥행에 큰 보탬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 상을 받든 안받든, 볼 사람은 미리 다 본다는 얘기다. 올해 작품상 후보에 올랐던 ‘반지의 제왕’ 2편도 총 수익의 94%는 후보작 선정 이전에 거둬들였다.
2002년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른 ‘물랭 루주’. 후보에 오른 이후 10주 동안 고작 20만 달러의 추가 수입을 올렸을 뿐이다. 2001년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인 ‘글래디에이터’도 수상작 발표 이후 재개봉됐지만 100만 달러의 수입을 추가하는데 그쳤다.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시카고’와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피아니스트’도 수상작으로 발표된 직후 각기 160만, 180만 달러의 주간 수입을 추가했을 뿐이다.
그나마 영화상이 힘을 발휘하는 것은 예술 영화들. 2002년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아이리스’는 당초 개봉기간 중 20만 달러도 못 벌었다. 하지만 상을 받은 뒤 재개봉돼 540만 달러를 더 벌어들였다.
그럼에도 아카데미상을 노리는 영화사들의 경쟁은 날로 뜨거워지고 있다. 아카데미 영화제 측도 과열경쟁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후보작 선정부터 시상식까지 기간을 줄이기로 했다. 그래서 내년 시상식은 3월이 아닌 2월말로 앞당겨졌다.
영화상에 대한 열기 때문에 미국에선 성인관객들이 볼만한 영화들은 연말에만 몰리고 나머지 시즌에는 10대와 20대가 좋아하는 유치한 영화들로만 채워진다는 불만도 높아지고 있다. 굵직한 상을 겨냥한 작품들은 아카데미영화제의 후보작 등록마감인 12월 31일까지 개봉을 마쳐야 한다. 이로 인해 연말에 수준 높은 영화들이 한꺼번에 몰리고, 나머지 1∼9월엔 안목 있는 관객들을 위한 영화가 거의 없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두드러진다는 것.
더욱 안타까운 점은 비수기에 개봉되면 얼마든지 관심을 끌만한 영화들도 연말 후보작 쟁탈전에 뛰어들었다가 실패하면 작품 자체가 완전히 묻히고 만다는 것. 지난해 ‘토끼 울타리’ ‘25시’ ‘니콜라스 니클비’ 등이 그런 사례로 꼽혔다.
고미석기자 mskoh119@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