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31일 개봉된 영화 ‘동해물과 백두산이’로 데뷔 13년 만에 첫 주연을 맡은 공형진(33·사진).
최근 한 식당에서 만난 그는 대뜸 영화 대신 음식을 화제로 삼았다. 그의 비유에 따르면 라면은 그의 데뷔 후 내내 꼬리표처럼 따라다닌 ‘조역전문배우’, 샤브샤브는 ‘주연’을 상징하는 말이다. 애드리브의 달인답다.
‘동해물과…’는 4일까지 전국 관객 50만여명을 기록하며 흥행에서 선전 중이다. ‘반지의 제왕-왕의 귀환’과 ‘실미도’ 등 ‘두 고래’ 틈바구니에서 얻어낸 성적표이기에 더욱 빛난다.
이 작품은 술판을 벌이다 잠이 든 사이에 여름 피서철 동해안으로 떠내려온 북한군 장교 백두(정준호)와 병사 동해(공형진)가 남한에서 겪는 에피소드를 그린 코미디. 두 사람은 귀환 작전이 계속 실패하자 최후의 수단으로 금강산관광 티켓이 걸린 전국노래자랑대회에 출연하지만 모든 게 허사다. 영화는 두 주인공이 낯선 자본주의 사회에서 겪는 해프닝을 통해 웃음을 제공하는 한편 이들과 사고뭉치 여고생 나라(류현경)의 따뜻한 교감으로 온기를 전해준다.
“무작정 웃기기보다는 웃음 속에 살짝 살짝 작은 감동을 숨겨두고 싶었습니다. 이런 매력이 잔잔한 바람을 일으키는 원인 같습니다.”
조역 전문에서 주연으로. 어떤 게 바뀌었을까?
“우선 바빴습니다. 전체 120신 중 80여신에 출연하니 쉴 틈이 없더군요. 촬영이 끝난 뒤에는 신문과 방송을 합해 20차례가 넘는 인터뷰를 했습니다. 부담스럽지만 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타고난 애드리브 능력에 가려 있지만 그는 자신의 장단점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는 ‘준비된 조연’이었다.
“‘블루’ ‘별’ ‘위대한 유산’ ‘오! 브라더스’ 등 지난해의 6편을 포함해 데뷔 이후 출연작이 22편입니다. 전 ‘ㅅ’ 발음이 좀 새요. ‘나이트’ 가면 ‘얼짱’으로 대접받겠지만 아무래도 얼굴도 배우로는 그리 잘 생겼다고 하긴 어렵죠.”(웃음)
그는 자신의 필모그래피에서 ‘파이란’을 ‘넘버 원’으로 꼽았다.
“당시에도 꽤 잘나가는 조연이었지만 최민식 선배의 권유로 오디션을 봤습니다. 그런데 감독님(송해성 감독) 반응이 신통치 않았어요. 그래서 즉석에서 오디션을 한 번 더 하자고 한 뒤 ‘내가 안 되면 촬영장에 배 깔고 눕겠다’는 강짜까지 부렸죠. 조연이었지만 ‘파이란’과 그 작품으로 만난 사람들이 내 연기 인생의 등불이 되고 있습니다.”
그는 또 “조연으로 출연해도 내가 등장하는 장면에선 ‘내가 주연’이라는 마음을 버린 적이 없다”며 “아마 ‘동해물과…’가 흥행이 잘 돼 속편이 제작된다면 제목은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아니겠느냐”고 말하며 웃었다.
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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